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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연명]‘일하는 노인’이 해법이다

입력 | 2004-10-03 19:00:00


영국에 가정용품업체로 유명한 B&Q라는 회사가 있다. 전체 종업원 3만5000명 중 18%가 50세 이상의 ‘노인’인 이 회사는 노인 고용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도전하기 위해 1989년 종업원 전원이 50세 이상으로 구성된 점포를 연 적이 있다. 6개월 후 이 점포의 생산성을 측정한 결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수익률은 18%가 늘었고, 종업원 이직률은 6분의 1로 줄었으며, 결근율은 39%가 낮아졌다. 파손이나 절도로 인한 상품 손실량도 59%가 줄었다. B&Q의 사례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과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한국에는 중요한 타산지석이다.

▼고령화사회… 노인생산성 인정을▼

엊그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30개 농촌지역 시군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20%를 넘어섰다고 한다. 고령화 속도를 실감나게 한다. 아직은 외국에 비해 노인인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때문에 노인문제가 ‘공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인문제를 ‘공포’로 느끼는 한 아무런 생산적인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다. 노인은 허약하고, 생산성이 낮으며, 젊은 세대의 행복을 앗아가는 ‘사회의 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의료정책은 기본적으로 ‘노인은 병약하고 자주 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병약한 노인을 어떻게 치료하고 돌봐줄 것인가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노인 스스로 적극적인 건강관리를 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은 미약하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76.5세이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수명은 64세에 불과하다. 국가가 건강관리프로그램에 적극 투자해 건강수명을 5년만 늘려도 젊은 세대가 내는 건강보험료를 줄일 수 있고, 사회 전체의 노인부양 부담은 더욱 크게 줄일 수 있다. 중진국 수준의 경제력에 치료 위주로 짜인 의료체계로는 고령화의 부담을 견딜 수 없다.

B&Q의 사례에서 보듯, 노인의 생산성이 무조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효율성이란 명분으로 50세도 안 된 직원을 내치면 이들에 대한 부양 부담은 현역 세대 전체의 몫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개별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갉아 먹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노인복지정책을 강화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나 노인인구가 15%, 20%를 넘으면 국가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노인들이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와 직종을 기업과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고령화 사회를 견딜 수 있다.

노인문제에 관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 규제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처럼 정부의 각종정책에 ‘노인영향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봄직하다. 예를 들어 이제 보편적 주거 양식이 된 아파트도 노인 친화적으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는 노인은 집에서 혼자 목욕할 수 있도록 욕조가 설계돼야 한다. 비단 주택뿐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여가문화시설, 그리고 고용 문제 등 국가정책 전반이 노인 친화적 환경으로 설계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짐’이 아닌 사회적 동반자로▼

고령화 사회는 인류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미증유의 사건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노인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물질문명에 기여한 시민의 일원이자 생산적 잠재력이 충분한 사회적 동반자라는 인식을 가질 때만이 고령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인정책은 이제 효를 실천하는 도덕적 정책이 아니다. 인류 사회의 최대 난제로 떠오른 고령화 사회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가 바로 노인정책임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