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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10월 첫째주

입력 | 2004-10-03 19:13:00

화천수력 2호기 복구 준공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954년 10월 9일 열렸다. -‘한국전기 100년 화보’ 자료사진


▼發電量 增加도 空念佛… 十一日부터 制限送電한다고▼

화천수력발전소(華川水力發電所)의 제二호 발전기의 완성을 계기로 상공부(商工部)에서는 지난 七월부터 일반가정용 전등의 철야송전(徹夜送電)을 실시하고 동기 갈수기의 전력난 해소를 장담하였으나 불과 三개월도 지나지 못하여 또다시 제한송전(制限送電)을 계속하고 있다 한다. 즉 상공부 전기국에서는 이에 대한 상공장관의 결재가 나는 대로 일몰(日沒) 이후 밤 十一시까지 그리고 일출(日出) 전 一시간의 제한송전을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치는 동기 갈수기로 인한 출력의 감소와 수요량의 증가에 있다고 하나 작금의 국내 평균발전량은 十一만kW로서 제한송전의 근거는 박약한 감을 주고 있다.

▼제한송전 해제 3개월만에 다시 전력난▼

남한 단독으로 치러진 5·10 총선거 직후인 1948년 5월 14일 오전 북한의 전기총국장은 남한의 조선전업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기를 끊겠다는 통보. 곧바로 정오 정각에 전기를 끊었다. 대부분의 발전설비가 북한지역에 있던 상황에서 송전 중단은 남한에 감내하기 힘든 전력난을 초래했다.

설상가상으로 6·25전쟁이 터졌다. 50년 5월 7만3557kW였던 남한의 평균 전력 공급량은 전쟁 발발 직후인 8월 1만1333kW로 뚝 떨어졌다. 모든 것을 파괴한 전쟁, 하지만 하나 ‘얻은 것’이 있었다. 전쟁 전 북한 수중에 있던 화천수력발전소를 수복한 것이다.

화천수력 1호기 복구가 끝난 52년 11월 남한의 평균전력은 8만7281kW로 올라 5·14 단전조치 이후 최고기록을 세웠다. 54년 10월엔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호기 복구 준공식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화천발전소의 복구는 자력 자립 재건의 귀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 2호기 각 2만7000kW씩 당시 화천수력발전소가 생산하는 5만4000kW의 전기는 제한송전의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화천수력 2호기 시운전을 시작한 54년 7월 제한송전이 해제됐지만 위 기사에서 보듯, 오래가지 못했다. 제한이 풀리자 전력수요가 급증했기 때문. 전면 무제한 송전이 실시된 것은 그로부터 무려 10년 뒤인 64년 부산화력 1호기(6만6000kW) 준공 이후의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5177만2000kW의 전력 생산량을 자랑하며 전기를 ‘물 쓰듯’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미래의 전력 부족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전기 수요는 끝이 없는 것인가.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