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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임규진/대통령의 낙관론과 국민의 절망

입력 | 2004-10-04 18:08:00


“희망이 없어요.”

추석연휴 기간에 국민의 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말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경제낙관론이 추석 민심을 전혀 파고들지 못한 셈이다. 특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대통령과 평범한 정보를 뒤늦게 듣는 국민 사이의 정보격차 탓인가.

하여튼 일반 국민의 체감경기와 거리가 먼 노 대통령의 낙관론은 추석 직전까지 계속됐다. “3% 성장할 때 우리 국민은 파탄이라고 얘기하고 올해 5%정도 성장할 텐데 국민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정말 욕심 많은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9월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거의 1위가 될 것이다.”(9월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인터뷰)

그렇다면 국민은 한가위에 희망에 부풀었어야 정상이다. 국민의 비정상적 기대심리가 문제인가.

낙관론의 주요 배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을 살펴보자.

OECD는 5월에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5%대로 전망하면서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수출호조가 민간소비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또 내수가 확대되기 전에 세계 무역의 신장세가 약화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이 낙관론을 피력한 9월까지 경제상황은 OECD 전제조건에서 갈수록 빗나가고 있었다. 수출호조는 민간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내수경기는 더욱 악화됐다.

게다가 올해 2·4분기(4∼6월)에 미국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하반기 세계경제전망도 나빠졌다. 내수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수출도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고유가로 인해 수출채산성이 떨어지고 물가마저 불안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여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9월에 올해 성장률을 4%대로 하향조정했다.

한국경제가 재정지출 확대와 밀어내기 수출로 올해 5%대 성장을 거둔다고 하자. 내년은 어떤가.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최근 들어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5%대에서 3∼4%대로 대폭 낮췄다. 올해가 경기정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움직임 모두가 현 정권을 흔들려는 음모인가.

과학적 판단을 벗어난 ‘나 홀로 낙관’의 근거를 묻고 싶다. ‘동해안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거나 ‘서해안에서 상당량의 금괴를 발견했다’는 특급정보라도 있나.

만일 그런 일도 없으면서 악화된 경제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면 이는 정직하고 논리적인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노 대통령이 국정혼란과 경제위기를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 모두가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자”고 호소했다면 추석 민심이 이렇게까지 흉흉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