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주한미군의 감축은 여러 면에서 안보 공백을 불러올 것이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축되는 미군의 장비와 인력을 메울 돈을 감당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방예산은 80년대 중반부터 하향 배분 추세가 지속돼 왔다. 전력증강 투자도 제자리걸음이다. 한국군의 구조적인 문제는 경상운영비 비중이 너무 크고 전력투자비 비중이 작다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는 2005년도 국방예산 편성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양적(量的) 대군(大軍)주의를 포기하고 질적(質的) 정예주의로 전환해 육군 위주의 기형적인 군 구조를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병력 감축으로 절약되는 예산만으로는 전력증강이 불가능하다. 1개 보병사단을 감축하면 연간 780여억원이 절약되는 반면 미 2사단 같은 첨단 사단 하나를 만들려면 5조원 이상 들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대북 군사력의 확실한 질적 우위를 확보하기 전에 병력부터 감축하는 것은 안보위기를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한 결론으로, 병력 감축에 앞서 국방비 증액을 통한 전력증강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군의 종합적 전쟁능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최근 연구가 그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제외하고도 우리가 열세인 것으로 나타난 남북간 재래식 무기의 전력 차는 주한미군이 감축되면 더욱 벌어질 것이다. 대만의 경우 60만 대군을 39만으로 감축하기 위해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지속 투자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내년 국방비는 올해의 GDP 대비 2.8%보다 약간 늘어난 2.9% 수준으로 편성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주한미군 감축 등을 감안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국가와 국민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