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연구 활동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발 원자력 파문’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이번 사건은 과학기술과 국력 사이의 불균형, 즉 국력이 과학기술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원자력은 우리나라 전력의 40%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요,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우수한 인력과 기술력으로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다. 또 원자력은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국제정치적인 사안이기도 하다.
원자력과 핵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개발 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북한 핵문제가 국제정치의 핵심 현안으로 대두돼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핵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은 피할 수 없다. 이번 파문은 이런 냉엄한 현실을 간과한 결과였다.
사태를 악화시킨 또 다른 요인으로 해외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 일본 정부의 격앙된 반응, 그리고 IAEA의 내부관리 소홀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외신은 한국에 정부 차원의 비밀 핵개발 계획이 있다는 식으로 의혹을 부풀렸고 우라늄 시험에 참가한 과학자들에게 사담 후세인에게나 쓰는 ‘불량한(rogue)’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IAEA는 한국에 대한 강력한 사찰을 요구하는 일본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외 언론의 왜곡 보도는 주로 IAEA 관련 인사들의 발언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IAEA 관리들이 사찰 내용을 대외비로 해야 하는 IAEA 규정을 어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IAEA 차원의 진상조사와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원자력 원천기술을 수입하면서 받아야 하는 설움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몫이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연구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특히 핵문제를 남북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상을 줄 경우 원자력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핵문제에 내포된 다차원적인 복합성을 간과하는 것은 국제사회로 하여금 모범생 남한과 불량배 북한을 동일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정보력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원자력 문제가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면 이번 사태 초기에 보다 슬기롭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련부처의 입장을 조정 종합하는 관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사람은 최고의 자원이며 이들이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야말로 사활을 걸고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국가가 과학자들의 바람막이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강한 국력이 필요하다. 국력은 경제력, 국가 신인도, 정책의 건전성, 중요 우방과의 관계의 견실성 등이 어우러져서 나온다. 국가정책 전반을 포괄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