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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교수의 Really?]소음없는 냉장고 공해도 없어요

입력 | 2004-10-05 18:53:00


언젠가부터 편의점 카운터에 포도주, 화장품, 심지어 담배를 넣어두는 낯선 상자가 등장했다. 크기도 작지만 소리도 없이 조용한데 문을 열어보면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냉장고다. 흥미롭게도 보통 냉장고 뒤에서 윙윙거리는 압축 펌프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냉장고도 등장했다. 이들이 바로 ‘열전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냉장고다.

서로 다른 금속을 연결한 후에 전류를 흘려주면 전류의 방향에 따라서 접합부가 뜨거워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한다. 시계공이었던 장 펠티에가 1834년에 발견한 ‘열전 현상’이다. 평지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가 언덕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속도가 바뀌듯이, 금속을 따라 흘러가는 전자도 서로 다른 금속이 만나는 접합부를 지나가면 그 속도가 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이다. 접합부를 지나면서 전자의 속도가 느려지면 접합부가 차가워지고, 반대로 속도가 빨라지면 접합부가 뜨거워진다.

대부분의 금속에서는 그 효과가 충분히 크지 않아서 별로 쓸모가 없지만, 반도체를 사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텔루르에 비스무트, 안티몬, 납 등을 혼합한 반도체로 만든 열전 소자를 이용하면 전류의 방향에 따라서 유용한 냉장고나 전열기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접합부를 지날 때 전자의 속도 변화가 충분히 커서 실용적인 냉각이나 가열 장치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전 반도체 소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전류가 흐르기만 하면 곧바로 전류의 양에 비례해서 온도가 변한다는 점. 그래서 컴퓨터 회로처럼 온도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는 경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또 온도를 영하 30도에서 영상 180도까지 변화무쌍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온수와 냉수가 함께 나오는 정수기의 등장이 가능했다.

더욱이 기존 냉장고와 달리 고약한 냄새와 독성을 가진 암모니아나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CFC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인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이런 냉장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셔벗을 좋아하던 로마의 네로 황제나 아이스크림을 즐기던 중국의 귀족이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duckhwa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