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그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지역회의에서 “국가보안법과 국가안보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국보법으로 안보를 담보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맹장에 꼬리처럼 달린 국보법 체계를 이상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국보법 제1조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안보와 상관이 없다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정 장관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독소조항과 과거 정권안보용으로 악용된 사례를 염두에 둔 듯하지만 그렇더라도 지나쳤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양극적 냉전체제와 대결로 일관했던 남북분단 상황 속에서 국보법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안전과 정통성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었겠는가.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국민도 이미 개정을 원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 이런 식의 억지논리를 펴지 않아도 국민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정 장관은 “유엔인권위원회도 폐지를 권고했다”고 지적했지만 준거를 잘못 들고 있다. 유엔인권위보다는 국보법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와 국보법 존치의 필요성을 확인한 대법원을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정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대북,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기에 더 적절치 않은 발언이다. 그의 발언은 북한이 적화통일이 명시된 노동당 규약을 바꾸지 않더라도 국보법 폐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공식적인 언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실무 주무부처인 법무부 장관이 하는 것과는 파장이 다른 법이다.
이러니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보안법 폐지 교환설’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작 법무부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데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하니까 의혹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