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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조헌주]이치로와 밥 셔윈

입력 | 2004-10-06 18:40:00


일본인 프로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2001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해 시즌을 맞았다. 한 미국인 기자가 처음 뉴욕 원정을 다녀온 그에게 뉴욕 양키스 홈구장이 맘에 들더냐고 물었다. 개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 기자들에게 ‘악명 높은’ 이치로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맘에 들었어요. 운동장으로 물건이 날아오지 않아서. ‘이 바보, 얼간아’하는 고함만 날아오고….” 그가 모처럼 인터뷰에서 유머 감각을 보여준 것이다.

▷일본에서 이치로는 7년 연속 타율 1위, 216타석 연속 무삼진, 69경기 연속 출루 등 숱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언론은 톱스타인 그의 뒤를 좇았고, 그는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언론을 피했다. 둘 사이의 마찰과 갈등은 컸다. 그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취재했던 한 기자는 “이치로는 인터뷰에서도 ‘예, 아니요’란 말만 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대중적 인기는 현재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 중인 홈런타자 마쓰이 히데키에 비해 낮았다.

▷미국의 프로야구 전문가들도 처음에는 동양인 타자 이치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애틀 타임스의 프로야구 담당기자 밥 셔윈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죄의 칼럼’을 쓴다. 이어지는 안타, 진루하면 투수를 흔들어놓는 빠른 발, 폭넓고 경쾌한 수비, 빨랫줄 같은 송구로 주자를 잡아내는 강한 어깨…. 이치로의 능력을 몰라봤던 자신의 실수를 독자 앞에 고백한 것이다.

▷84년 만의 미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 경신이 임박하자 일본 언론들은 이치로의 한 타석 한 타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새 기록이 나온 날에는 이치로가 ‘무려 40분간이나’ 기자회견을 했다고 야단이었다. 라커룸에서 동료들과 춤추는 모습에는 “이치로가 냉정한 줄만 알았는데 이런 면도 있었다”며 크게 보도했다. 적대적일 정도로 그를 차갑게 대했던 매체들이 그를 칭송하느라 침이 말랐다. 야구천재 이치로의 가치는 언제나 똑같이 존재해 왔건만 마치 새로운 이치로가 태어난 것 같았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언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