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나온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가기밀 관련 발언에 대해 열린우리당측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제를 삼고 나서면서 여야간의 공방이 뜨겁다.
열린우리당은 7일 한나라당 박진, 정문헌 의원의 군사기밀 공개에 대해 사법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면책특권은 야당의 유일한 권력감시 수단”이라며 여당의 공세는 의정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라고 맞서고 있다.
▶국정감사 ‘국가기밀 누출’ 논란[POLL]
▽면책특권 인정되나=박 의원은 통일부 국감에서 ‘북한 남침시 16일 만에 서울 함락’ 시나리오를, 정 의원은 ‘북한 붕괴시 정부의 비상계획’을 각각 공개했다. 두 의원은 이에 관한 보도자료도 언론에 배부했다.
헌법 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법학자들은 국가기밀 내지 군사상 기밀이라도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기밀 공개가 면책특권의 요건인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의 요건을 충족했느냐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고려대 장영수(張永洙·법학) 교수는 “보도자료를 배부한 것은 ‘발언과 표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면책특권이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장 교수는 “특히 국가기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볍게 공개를 했다면 의도적 유출로도 볼 수 있다”면서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최소한 국회 차원의 징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건국대 임지봉(林智奉·법학) 교수는 “대법원은 면책특권의 요건에 대해 직무행위 그 자체뿐만 아니라 부수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이럴 경우 군사기밀 공개는 물론 관련 보도자료 배부까지도 면책이 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환(兪成煥) 전 의원 사건 및 외국사례=1986년 대정부 질문에서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는 반공보다는 통일’이라고 말했던 유 전 의원은 본회의장에서의 발언은 면책됐지만 기자실에 보도자료를 배부한 것이 문제가 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유 전 의원은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선 “면책특권 성립 요건에는 직무행위 선후에 벌어지는 부수행위까지도 포함된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는 보도자료 배부도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포함된다는 취지였다.
외국의 경우 군사기밀을 공개해도 면책특권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독일의 경우 ‘중상적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기본법에 넣어 명예훼손에 대해서만 제한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의원의 활동을 ‘입법적 행위’와 ‘비입법적 또는 정치적 행위’로 구분해 전자에 대해서는 특권을 인정한다. 연방대법원은 입법적 행위의 면책특권만 인정하는 엄격한 판결을 하고 있는 추세다.
법학자들은 “면책특권은 의회가 정부를 감시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국회 내 자정노력과 함께 내부 징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