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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은 없고 정쟁만 있다…與 “스파이와 함께 국감 못한다”

입력 | 2004-10-07 18:30:00

7일 국방조달본부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으나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이 한국국방연구원의 비밀 연구보고서를 공개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을 ‘스파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했다. 정회가 선포된 국감장을 조달본부 관계자와 속기사 등이 지키고 있다. -김경제기자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초입부터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세에 열린우리당이 강경대응으로 맞서면서 ‘여수야공(與守野攻)’의 전통적 관계가 ‘여공야수(與攻野守)’로 역전되고 있다. 국정감사장도 정쟁의 영향권에 접어들면서 연일 파행이 빚어져 ‘정책감사’ ‘대안감사’를 외쳤던 여야의 다짐은 초장부터 빛이 바랬다.

▽여야 장외(場外)전=여야의 아침 전략회의가 끝나는 오전 9시경 국회 기자실은 마이크를 잡으려는 여야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등의 발길이 이어진다. 국감 하루 기상도를 파악할 수 있는 ‘홍보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국감의 초점도 자연 아침 장외브리핑에 맞춰진다.

7일 열린우리당에서는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이 잇따라 등단해 군사기밀 폭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 박진(朴振) 정문헌(鄭文憲) 의원에 대한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에 대한 고발(위증혐의) 방침을 전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군사기밀 누설을 국감 초반 한나라당의 이념공세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호재라고 보고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임태희(任太熙) 대변인과 박 의원이 나서 열린우리당의 군사기밀 누설 공세를 ‘신공안정국’ 조성 의도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8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정부 여당은 국감 방해 책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국감 초반 주도권을 잡은 이슈의 불씨를 살려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민중사관 편향 논란을 빚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날 국감 이후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감장도 정쟁(政爭) 중=당 지도부의 이런 강성기조는 국감 현장에 나와 있는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게 바로 전파된다. 이날 조달본부 국정감사를 벌일 예정이었던 국방위는 군사기밀 누출논란이 빚어지면서 또다시 파행으로 얼룩졌다. 열린우리당 안영근(安泳根) 의원이 유재건(柳在乾) 국방위원장에게 “4일 박진 의원의 수도함락 발언과 관련해 제척 요구를 했던 일이 있다”며 “박 의원의 공개사과로 일단락됐으나 제척 과정이 심의되고 있느냐”라고 포문을 열었다. 안 의원은 또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이 스파이이며, 이런 혐의자와 함께하는 것은 위원장의 직무유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박 의원은 “오늘은 예정대로 진행하려고 이 자리에 왔으니 안 의원은 말씀을 삼가 달라”며 “안 의원의 발언은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심각한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한나라당 권경석(權炅錫) 의원은 “같은 당 의원이 스파이로 지목된 상황을 수용할 수 없다”며 스파이 발언의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오후 4시경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는 바람에 정회는 이날 자정까지 이어졌다.

6일 행정자치위 서울시 국감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이전 문제로 골이 깊어진 열린우리당과 이명박 시장은 이 시장의 관제데모 동원 여부를 놓고 하루 종일 말싸움만 벌였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향성 논란 때문에 파행을 거듭한 교육위는 정작 사립학교법 개정문제 등 핵심현안은 제대로 다루지 못해 정쟁에 매몰된 양상이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