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대학평가제도를 도입한 지 10년이 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신문과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조사하는 대학평가 결과가 공표된다. 그만큼 대학에 관한 정보가 축적되고 대학의 투명성도 향상돼 왔다. 교육부는 앞으로 대학행정을 더 투명하게 하기 위해 대학의 정보공개를 강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해외 대학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정부의 정책전환은 한참 늦은 느낌이 든다.
▼국내 대학순위 발표의 착시현상▼
문제는 평가의 기준이고, 평가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의 평가기준이나 방식을 되풀이한다면 한국의 대학교육은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해마다 평가결과가 나오면 주관기관은 종합순위를 매겨 최우수대학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수험생이나 국민은 한국에도 상당수 우수한 대학이 있고, 또 그 수준도 해마다 나아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착시현상의 한편에는 평가결과를 침소봉대해 학교 홍보에 활용하는 대학들의 책임도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 기관들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IMD의 2004 세계경쟁력 순위에서 한국대학 교육의 질은 고작 끝에서 두 번째인 59위에 그쳤다. IMD는 개별 대학을 평가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국가간 비교라는 점에서도 국내 대학평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체적 지표를 측정하지 않는 평가의 엄밀성 문제가 있지만, 이 평가는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한국교육 경쟁력의 취약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 사실이다.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학생 대(對) 교수 비율이다. 한 교실에 100명을 놓고 강의하는 대학은 10명을 한 단위로 교육하는 대학과 경쟁할 수 없다. 한 교수가 한 학기에 네 과목을 강의하는 조건에서는 국제수준의 연구는커녕 학생들의 과제평가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최우수 대학이 공인되는 대학평가의 역설이다.
워싱턴주립대는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 대학 가운데 120위 수준의 학교다. 이 학교의 학생 대 교수 비율은 17 대 1이다. 117위로 평가된 오리건대는 학생 대 교수 비율이 19 대 1이다. 워싱턴주립대의 강의는 대부분 20명에서 29명 규모이고, 실험실습 수업의 규모는 2명에서 9명 정도를 유지한다. 오리건대도 비슷하다.
이 숫자를 염두에 두고 한국의 현실을 보면 우리 대학의 국제 수준이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대 교수 비율을 유지하는 학교는 포항공대다. 이 학교는 교육부 자료를 토대로 한 보도에 따르면 16 대 1의 비율을 유지한다. 서울대는 22 대 1, 연세대 26 대 1, 고려대는 35 대 1의 비율을 보인다는 게 이 자료가 제시하는 현실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 대학들은 한국 최고의 학교들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학교들 가운데 포항공대만이 겨우 워싱턴주립대 수준의 교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포항공대는 공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과대학이다. 한국 최고의 종합대학인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모두 미국의 100위권 밖 대학들과 비교해도 부실하다.
▼교수-학생 비율 현상태로는…▼
프린스턴대는 2004년 미국 대학 평가에서 하버드대와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이 학교의 학생 대 교수 비율은 5 대 1이다. 등록 재학생은 4600여명, 교수는 797명이다. 이 학교의 강의는 대부분 2명에서 9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프린스턴 리뷰’지의 보고다. 하버드대의 비율은 8 대 1, 브라운대도 8 대 1이다. 한국 대학 가운데는 이 비율이 40 대 1을 넘는 학교가 73개교에 이른다. 세계적 대학들은 5, 6명의 학생을 놓고 수업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10명이 안 되는 강의는 대체로 폐강을 당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끼리 최우수 대학을 만들어 내는 평가기준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자 근본적인 개혁을 포기하는 행위다.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