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윤상선 그림 김남복기자
◇스타일의 전략/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 신길수 옮김/284쪽 1만3000원 을유문화사
영어권 사람들에게 대단히 멋진 제품이나 사람을 표현하라고 하면 ‘스타일리시(Stylish)’라고 한다. 도대체 스타일리시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역사, 철학, 소비문화적으로 풀어 놓은 이 책은 디자인이나 미학 전문가의 반발을 살 책이다. 그러나 소비자나 마케팅 담당자에게는 안도의 미소를 떠올리게 할 책이다.
저자는 기능이 외양과 느낌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잘사는 국가이건 아니건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원천적 욕구에 기초한다고 분석한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미적 아름다움이 실생활의 일부이며 별도의 예술 영역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합리성으로 똘똘 뭉친 기업이라고 생각되는 GE 플라스틱스가 기술자나 구매담당자에게 얼마나 싸게 원료를 살 수 있는지 설명하는 대신 무지개 색조를 이루는 4000개 칩들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이게 좋은 디자인이야”라는 이념보다는 “난 이게 좋아”라는 개인정서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스타일이며, 이는 고객이 엄청난 프리미엄을 지불토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저 책상 위에 놓인 아이맥이 좋다. 회색보다는 검은색이 매력적이어서 IBM 노트북을 샀다. 커피 맛도 좋긴 하지만 분위기가 좋아서 스타벅스를 찾는다. 반짝이는 입체영상이 있는 신용카드 때문에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찾는다. 충치치료보다는 치아미백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소비자들을 비합리적인 구매를 한 ‘이상한’ 소비자로 간주하지 않아도 된다.
저자에 의하면 그들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에 충실했을 뿐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대에도 아름다운 건축과 장식이 있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보듯이 가난한 미개인들도 페인팅과 각종 장신구를 활용한다.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나 미적인 욕구를 갈구하며, 기업은 기본욕구를 충족시킨 이후에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일반론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물론 저자가, 통화는 안 되지만 멋있기만 한 휴대전화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정 기능이 확보된 경우 ‘재미있고 화려한’ 자동차가 튼튼한 자동차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우리 속담을 보면, 저자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도 뿌리 깊게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뻐서 바이오 노트북을 샀다고 하면, 귀여워서 뉴비틀을 샀다고 하면 좋은 제품을 모르는 멍청한 소비자라고 간주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가볍다, 성능이 좋다, 주차하기 쉽다’ 등의 이유를 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기능 제품이라고 분류되는 신문이나 욕실 청소도구까지도 스타일 차이만으로 판매가 늘고 가격이 10배나 차이가 난다는 사례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스타일이 좋으면 기능이 뒤떨어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고안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금발의 하버드대 법대생이 스타일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최고의 변호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도 바로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리라.
조은정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