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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정헌]‘용사마’ 현상 어떻게 살려갈까

입력 | 2004-10-08 18:47:00


미용성형외과 의사이다 보니 사물을 대할 때 아무래도 미적인 부분을 우선 떠올리곤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비교론을 말할 때도 가치관이나 문화 외에 외견상의 차이에 관심이 간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과 일본인, 어느 쪽이 미남미녀일까’라는 것이다.

물론 미의식은 상당히 주관적이며, 문화적 역사적 배경까지 관련돼 있어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뚱뚱할수록 아름답다고 하는 어느 아프리카 부족도 있는데, 그것은 풍만함을 풍요로 간주하는 가치관에 기인한다. 그러나 한일간에는 지역적, 인종적 차이가 적어 미의식에서 아주 동떨어진 차이는 생각할 수 없다.

20여년 전,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면 축구나 배구종목의 남자 한일전이 열릴 때 TV에 비친 두 나라 선수들의 인상은 일본쪽이 보다 세련됐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한국 여성들은 당연히 한국팀을 응원하지만 선수들의 외모에 대해서는 대체로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일본 남성들이 얼굴형도, 성격도 부드럽게 보이는 이미지였다고 할까. 하지만 그때에도 여성의 경우는 한국쪽이 스타일이나 얼굴형에서 일본보다 우위라는 인상이 보편적이었다. 한일 두 나라 남녀의 외모는 ‘여고남저’였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 특히 안정환 선수의 활약은 ‘한국 남자=미남’이라는 인상을 일본에 심어줬다. 결정적인 것은 드라마 ‘겨울연가’와 배용준씨다. 나에게도 일본의 신문사로부터 ‘배용준 현상이 일본의 미용성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취재요청이 있었을 정도다. 일본 언론은 배씨를 ‘용사마’라고 부른다. 사마는 그냥 미남자가 아니라 품격 있고 세련된 귀족적인 이미지를 가진 남자에게만 붙이는 칭호다. 그리고 ‘용사마’ 현상은 한국 남자 전체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간혹 나에게 “선생님 얼굴, 귀족적이네요”라고 듣기 좋은 얘기를 한다.

여성은 물론 남성까지 한국인이 일본인에 비해 풍모가 낫다고 인식된다는 것은 한국에는 유익한 변화다. 외모가 주는 좋은 이미지는 단순히 이미지로 끝나지 않는다. 동양인이 서양인의 외모에 대해 느끼는 ‘부러움’은 문물의 수입으로 이어지곤 한 것이 현실 아니던가. 외모의 이미지는 국제관계나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지금부터다. 달라지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대한(對韓) ‘이미지’를 어떻게 ‘유형(有形)의 것’으로 전환해 내느냐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나는 ‘귀족적’이라는 치사에 대해 “본래 일본 고대의 귀족은 한반도계였다”며 역사 얘기를 꺼내는 것 외에 달리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역사와 문화정책을 다루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전문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유형’을 산출해낼 방법을 적어도 나보다는 잘 알 것이다. 물실호기(勿失好機)란 말이 새삼스럽다.

정헌 일본 도쿄 시부야정형성형외과의원 원장 teiken@v003.vaio.ne.jp

▼약력▼

196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부속병원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도쿄대 의대 성형학과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