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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반칠환/정년퇴직

입력 | 2004-10-10 18:14:00


《한평생

그를 싣고 다니던 자전거가

문간에 선 채 녹슬고 있다

쓸만한 안장과

멀쩡한 두 바퀴가

저녁 햇살을 쏘아올리면서

보란 듯이》

- 시집 ‘환한 저녁’(실천문학사) 중에서

‘쓸만한 안장’과 ‘멀쩡한 두 바퀴’뿐이겠는가. 필시 저 자전거의 주인도 아직 ‘쓸만한 머리’와 ‘멀쩡한 두 다리’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빈 자전거의 용태(容態)가 저리도 주인의 모습을 닮았을까. 문간에 선 채 녹이 슬고 있는 것처럼 주인도 부쩍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었으리라.

정년 퇴직한 풀벌레를 본 적 있는가? 정년 퇴직한 까치, 고양이, 버들치, 개구리를 보았는가? 아니, 정년 퇴직한 농부를 본 적 있는가? 산업화, 분업화된 문명 탓에 생애보다 정년이 먼저 닥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직업엔 정년이 있어도 자기 삶에 정년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어서 저 주인이 생의(生意)를 추슬러, 빈들일망정 눈부신 햇살을 굴리며 달려갔으면.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