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연구개발(R&D) 사업으로 보고 이를 국가대계로 적극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대형화되면서 대학 연구력의 기반이 되는 개인 및 소그룹 단위 기초연구의 중요성이 희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막에 아무리 큰 아름드리나무를 심는다 해도 결국 생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대학의 기초연구를 통해 연구 저변이 확대되고 내실화되지 않으면 대형 연구개발 사업도 결국 그 기반의 부실함 때문에 장기적으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연구지원은 대학 및 연구기관의 모든 인력에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열려 있어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씨앗이 모두 발아될 수 있게 비옥한 토양의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 R&D사업 응용부문 치중▼
우리 정부의 R&D 예산 중 기초연구의 비중은 2003년 기준으로 19.5%라고 한다. 이는 미국의 24.4%, 영국의 33.2% 등 선진 외국과 비교할 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절대액 규모로는 엄청난 차이일 것이다. 응용 R&D 부문은 즉각적인 실용화의 가능성 때문에 민간 부문의 필요에 의해서도 투자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구는 사회혁신 역량의 기반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즉각적으로 실용화되어 시장에 접목되기 어렵고(물론 실용화로 이어지는 단계가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는 까닭에 민간의 적극적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부문이다. 정부가 미래혁신 역량 축적을 위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기초과학 및 기초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가야 할 것이다.
다양한 기초연구를 통해 깊고 넓게 축적된 지식이 민간 영역과 결합되어 결국 사회 전체의 혁신 역량을 증강시킬 것이므로 기초연구 투자가 그 나라의 혁신 역량과 국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R&D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화하면서 부처별로 역할을 분담하게 되고 기초연구 분야는 교육인적자원부가 관장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와 관련하여 이공계 쪽에서 우려와 걱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 교육부가 이공계 학문의 기초연구 육성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이공계의 학문적 특성을 잘 반영한 연구지원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한 의문 때문이다. 이 점에서 향후 교육부의 숙제는 조속한 시일 내에 이공계의 학문적 특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문화된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연구자들이 잠재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돼야 한다.
학문 기초분야에 헌신하는 것이 어렵고 험난한 길로 비치기에 정작 투입되어야 할 우수 인력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연구 인력의 생애주기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주어 우수인력이 기초연구를 외면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 연구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구 저변의 확대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와 함께 우수 과학자에 대한 집중지원 정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연구를 위한 제도적 관용이 뒷받침될 때 연구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과 결집할 지식네트워크 필요▼
또한 국가적 비전에 따라 광범위하게 축적된 지식이 효과적으로 유통되고 실용화되며 피드백 될 수 있도록 지식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것 역시 교육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사막에서 나무가 건재할 수 없듯이 R&D의 결실은 결국 크고 작은 연구력의 결집과 활용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야심 찬 R&D 투자가 21세기 과학기술 르네상스를 열어가는 초석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수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