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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성희]大學맘대로 학생 못뽑는 나라

입력 | 2004-10-10 18:49:00


“강남에 못 사는 내 죄입니다.”

명문 사립대학들이 1학기 수시모집 전형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듣고 수시모집에서 자녀가 떨어진 비강남권의 학부모가 흐느끼면서 했다는 말이다.

해당 대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비강남권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대학들은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가 만연한 상태에서 학생의 실력차를 평가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형기준을 적용했을 뿐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력차’가 아닌 ‘지역차’ ‘빈부차’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최근 중학생 자녀를 둔 지인 두 명이 서울 강북에서 교육특구라는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 월급쟁이 처지에 집을 살 형편은 못 되고 살고 있던 집을 전세 놓고 은행 대출을 보태 ‘맹모(孟母)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정부가 2008학년도부터 대입제도를 개선한다고 했는데 과연 내신에서 손해는 안 볼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둘째 치고 강남에 사는 것이 죄지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들 중 한명은 “특목고를 갈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대치동 막차를 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강남권 학부모의 이유 있는 항변도 있다.

“현실적으로 실력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며 “우리 아이는 우수한 아이들과 경쟁하며 4시간도 안 자면서 공부했는데 그만큼 보상이 있어야 하고 우수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이 무슨 잘못인가”라고 따져 묻고 있다.

최근 입시 전형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한 문제가 우리 사회를 또다시 분열과 갈등의 대결구도로 몰아넣는 우려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행정수도 이전, 과거사 규명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국론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교등급제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냉정히 짚어보면 1차로 비난을 받아야 할 곳은 대학이 아니라 내신 부풀리기에 앞장서 온 고등학교들이다. 성적 부풀리기에 동조하고 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온 학부모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책임이 큰 곳은 현실적으로 학교간 실력차가 엄연한데도 ‘평등’ 이데올로기에 매달려 문제를 외면해 온 교육당국이다. 강남 학부모의 교육열 때문이건,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사교육의 결과이건 문제는 학생들의 실력이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대학이 자신들 마음대로 학생을 뽑지 못하는 곳이 없다. 대학들은 기여입학제, 흑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 등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학생을 선발한다. 이 과정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이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대학의 학생선발 과정을 들춰내거나 학부모나 학생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기업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뽑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자신들이 교육시킬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고유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죄는 강남에 못 사는 것이 아니고 엄연한 문제를 외면해 온 교육당국의 안이한 현실인식인 것이다.

정성희 교육생활팀장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