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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녕]취지가 아무리 좋다한들…

입력 | 2004-10-13 18:16:00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그중 83%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는 많이 들어오는 세금으로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해 온갖 선심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펼 수가 있기 때문에 쾌재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소득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죽을 맛일 게다. 열심히 일해 많은 돈을 벌기보단 차라리 실업자로 놀면서 수당을 타먹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기업을 포기하거나 외국으로 옮기는 사람도 숱하게 나올 것이다.

국가경제도 얼마 안 가 엉망이 될 게 뻔하다. 소비가 위축될 것이고, 투자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상실되면서 사회는 무기력하게 변할 것이다.

결과는 뻔하다.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갈수록 세금이 적게 걷히고, 결국 정부는 기존의 선심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덜 가진 사람은 이전보다 더욱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소설 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영국에서 노동당이 집권했던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최고 소득세율이 83%이던 그때 영국은 ‘유럽의 병든 환자’로 추락하고 말았다.

1979년 5월 ‘우리를 자유롭게 해 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권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최고 소득세율을 60%로 낮추었고 1989년엔 40%로 끌어내렸다. 이후 영국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고, 노동당으로 정권이 바뀐 지금도 이 세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당장은 목적이 좋아 보이는 정책이나 제도라도 인간의 자율성, 창의성, 기본적인 욕구를 지나치게 억제하면 장기적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정부는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시드는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각종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대입전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고교등급제, 본고사형 지필(紙筆)고사, 기여입학제 등 이른바 ‘3불(不)원칙’에서 보듯이 억제정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게 잘 먹혀들고 있는가.

또 자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학에 대해 손발을 붙잡아 둔 상태에서 학생을 뽑아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내라는 주문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성매매특별법의 경우도 보자. 인권을 유린당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악의 굴레’에서 구하고, 불건전 성문화를 바로잡겠다는 좋은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 취지와 현실은 별개의 문제다. 점잖은 체면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무차별 단속으로 성매매 자체가 근절될지, 혹시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들이 생겨 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각종 경제정책 중에도 인간의 창의성이나 성취감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기보단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금 세대에는 물론 후세에도 우리가 ‘최고 소득세율을 83%까지 올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진녕 사회부장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