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통해 ‘영혼의 무게’에 대한 종교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 ‘21그램’. 사진제공 인필름앤컴
‘21그램’은 어지럽다. 호흡이 짧은 교차편집을 통해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이 영화는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인간의 운명이 갖는,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 속으로 돌진해간다.
대학교수인 폴(숀 펜)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심장이식만을 기다리는 처지. 그는 드디어 누군가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산다. 한편 남편, 두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던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는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고 약물 중독자가 된다. 또한 범죄자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종교를 통해 구원받고 싶어 하는 잭(베니치오 델 토로)은 교통사고로 세 사람을 죽이고 고뇌에 빠진다. 일면식도 없던 이 세 사람의 운명이 한데 엉긴다.
‘21그램’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관찰자적 시점에서 바라보지만, 사실 무척이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복잡해 보이는 구성과 달리 단 2개의 키워드로 정리된다. 하나는 ‘시련’이며, 또 다른 하나는 ‘선택’이다.
‘시련’은 세 남녀가 겪게 되는 절망적인 ‘아이러니’의 형태로 다가온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숨겨진 다음 4개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①잭은 신의 은총(이라고 굳게 믿는)으로 복권에 당첨돼 새로 구입한 멋진 트럭을 몰다가 크리스티나의 가족을 치어 죽이게 된다. 이는 은총인가, 아니면 시련인가. ②크리스티나의 남편 심장을 이식받은 폴은 크리스티나와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티나에겐 남편의 죽음이 시련일까, 다가올 행복의 단초일까. ③죽어가는 폴의 곁을 지키며 인공수정이라도 해서 폴의 자식을 갖고자 하던 아내(샬럿 갱스부르)는 폴이 회복된 뒤 폴로부터 결별선언을 듣는다. 폴의 기사회생은 아내에겐 기쁨일까, 시련의 씨앗일까. ④크리스티나의 요청으로 폴은 크리스티나의 남편을 죽게 한 잭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하지만 잭이 교통사고를 내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폴은 새 심장을 이식받을 수 없었을 터. 잭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대리복수인가, 아니면 생명의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인가.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세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이들은 결국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운명의 이름으로 부닥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21그램’이다. ‘사람이 숨진 직후 생전 몸무게에서 갑자기 빠진다’는 이 21g의 무게는 초콜릿 바 하나의 무게인 동시에, 이들 세 남녀가 벌이는 사랑(+)과 증오(―)와 용서(+)와 복수(―)를 죄다 한저울에 올려놓고 더하거나 뺀 최종의 값인 동시에, 영혼의 무게다.
주름살 한 줄 한 줄에 산다는 것의 피로함과 쓸쓸함을 담는 숀 펜은 섹스신에서조차 너무 절망적이다. 또 베니치오 델 토로의 존재감은 이렇듯 정신적 외상을 품고 있을 때 더 강렬하다.
‘21그램’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운명이 부조리하다면, 이 영화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다음 대사는 운명의 짓궂은 장난에 맞서기 위한 인간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 인간이 걸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당신 영혼의 무게는 얼마인가. 21g? 그보다 많은? 아니면 그보다 모자란….
2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