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오른쪽)과 대만 허우샤오셴 감독의 오픈토크 행사가 12일 부산의 한 호텔 야외공간에서 열려 영화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부산=최재호기자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69)와 대만의 허우샤오셴(侯孝賢·57). 유럽과 아시아의 두 거장이 만났다.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두 사람은 12일 오후 부산의 한 호텔 야외공간에서 진행된 ‘오픈 토크’를 통해 영화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영원과 하루’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알렉산더 대왕’ ‘안개 속의 풍경’으로 두 차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허우 감독은 대만 토착민과 이주민의 갈등을 그린 ‘비정성시(悲情城市)’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날 한 시간 남짓 진행된 두 노장의 영화 이야기는 그 만남만으로도 무게나 깊이에서 이번 영화제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1995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감독은 그리스 내전과 대만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영화 작업을 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리스 현대사 3부작 ‘1936년의 나날’ ‘유랑극단’ ‘사냥꾼들’을, 허우 감독은 ‘비정성시’ 등 대만 현대사 3부작을 각각 연출했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허우 감독은 대만의 현대사 자체”라고, 허우 감독은 “12세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영화에 담는 주제와 롱 테이크(길게 찍기)를 좋아하는 스타일 등에서 우리는 비슷하다”고 서로를 평했다.
두 거장은 할리우드 영화의 전 세계적인 공세, 미학과 철학의 빈곤으로 초래되는 이른바 ‘영화의 죽음’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영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을 펼쳤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현재 그리스에서 상영되는 작품의 90%가 할리우드 영화”라며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던 1960년대와 비교할 때 오히려 후퇴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절친한 친구인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말인 ‘영화가 죽기 전에 나는 죽고 싶지 않다’를 인용하면서 “나는 영화가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우 감독은 “영화를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 만들려는 세계화가 문제”라면서도 “죽음이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듯 영화도 순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나이와 관련된 유쾌한 농담으로 상대방을 격려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조금 늙긴 했지만 무조건 다작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허우 감독)
“(포르투갈)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 나이(96세)까지 찍어라.”(앙겔로풀로스 감독)
부산=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