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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돈많은 자기야 어딨니?

입력 | 2004-10-14 16:21:00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부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 둘째는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부자가 되는 것, 마지막은 첫째 또는 둘째의 조건을 갖는 데 성공한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중국의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올 3월 난징(南京)의 남자 대학생인 샤오위(22)가 1억위안(약 15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여성을 배우자로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샤오위는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보았다”며 “돈 많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면 남보다 10∼20년 앞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대상의 한 패션잡지가 최근호에서 제시한 ‘부자 남자 타입별 공략법’.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남성에게는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가고 땅 부잣집 아들은 ‘성형수술로 완벽한 얼굴과 몸매를 만든 뒤 튕기는 듯한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사장 아들을 만나려면 ‘유학을 가거나 유학생들이 자주 가는 바 등을 노려야’ 한다나.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비즈니스’다. 그들은 결혼을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것쯤은 이제 일반적인 일. 원하는 상대와의 결혼을 위해 구체적인 전략들을 동원하는 ‘혼테크족’들이 많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주최한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서먹함을 없애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좋은만남 선우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 모든 청춘 남녀들의 공통된 생각. 요즘엔 이를 실현하기 위해 훨씬 구체적인 테크닉이 동원된다.

부와 신분의 세습이 더욱 확고해진 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에 허덕이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재테크를 하듯, 결혼을 잘하기 위한 ‘혼(婚)테크’에 ‘올인(다걸기)’하고 있다.》

○ “혼테크, 당연한 것 아닌가요”

▼男▼

10월 어느 주말, 서울 강남역 근처 한 음식점에 28세 동갑내기 남성 3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울대 동문인 동네 친구들. 김모씨는 종합병원 레지던트 3년차, 서모씨는 대기업 핵심부서의 엘리트 사원, 이모씨는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다니다 사업가로 성공한 젊은 사장이다. 모두 미혼인 이들의 이날 대화는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모아졌다.

“요즘 잘나가는 예쁜 여자들은 다 금융계 남자랑 결혼하더라, 나도 컨설팅 다닐 때 결혼하지 그랬느냐는 얘기 많이 들어. 억대 연봉이라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냐.”(이)

“대학 때만 해도 여의사에게 최고의 배우자는 남자의사고 남자의사에겐 최악의 배우자가 여의사라고들 했어. 근데 요샌 남자의사에게도 여의사가 베스트지. 그만큼 남자들도 경제적인 조건을 많이 보게 된 거야. 병원에 계속 남으려면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선배가 우리 병원 교수 딸이랑 결혼하는 걸 보니 부럽더라. 그게 우리식 ‘로열 패밀리’야.”(김)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계층 이동은 힘들다고. 결국 결혼 외에 부를 얻는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야.”(서)

“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대머리 된다. 대머리 되면 결혼 힘들어. 어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대머리인데 가발 썼을까봐 잡아당겨보기까지 한다는데. 하하.”(이)

▼女▼

지난달 결혼정보회사 퍼플스에 가입한 오모씨(29·여). 전문대를 졸업한 평범한 집안의 장녀인 그는 170cm의 키에 청순한 마스크의 미인으로 외국계 항공사의 승무원이다.

“판검사는 싫어요. 월급 얼마 안되잖아요. 로펌에 들어가지 못한 신출내기 변호사도 사절이에요. 의사도 개업의가 아니면 사양이죠. 본인이 돈을 못 벌더라도 집안에 돈이 많으면 괜찮아요.”

돈만 보고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지 않을까.

“돈 많으면 무조건 한다는 게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 중에서 만나보고 맘에 들면 결혼한다는 건데 뭐가 나쁜가요.”

얼마 후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MBA(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한 남성을 소개받았다. 그 남성은 명문가 딸도 마다하고 무조건 ‘키 크고 예쁜 여자’를 원했었다. 다음날 퍼플스의 매니저는 2명에게 동시에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둘 다 원하는 조건에 딱 맞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 부유층 사교클럽 줄줄이 꿰기도

결혼을 잘하기 위한 전략도 가지가지다. 조건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나 모임을 자주 찾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기업 오너의 며느리인 김모씨(30)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테크의 ‘전설’로 불린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고생했던 김씨는 입버릇처럼 “난 꼭 부자랑 결혼해서 냉장고에 먹을 것 꽉꽉 채워 넣고 살림만 하면서 살 거야”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했지만 ‘비전이 없어’ 곧 사표를 던지고 오직 결혼을 위해 물 좋다고 소문난 한 명문대 국제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원 내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데 주력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혼테크족들은 동호회에 가입할 때도 부유층이 많은 데를 고른다. 결혼정보회사 피어리의 이정훈씨는 “골프나 승마 동호회에 가입만 하고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남녀들이 취미란에 골프나 승마를 넣어달라고 한다”고 전한다.

회사원 권혁상씨(27)는 “집이나 직장과 멀어도 강남의 영어학원에 다니고 헬스클럽도 비싼 곳을 택한다. 예쁜 여자들도 많은 데다 돈이 많아 보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의 한 스시바에서 일하다가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를 만나 21세기 신데렐라가 된 한국계 미국인 앨리스 킴은 혼테크족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알바족’인 이은주씨(24·여)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패스트푸드점보다는 명품 매장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유층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방법도 동원된다. 재벌가 며느리들에게 요리를 가르친 ‘방배동 선생님’ 최경숙씨의 경험.

“얼굴도 모르는 한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 딸이 명문여대를 나오고 얼굴도 예쁜데 집안이 가난하니 꼭 명문가에 시집보낼 수 있도록 중매를 서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요리만 가르치는 사람이라며 정중히 거절했지만 편지가 어찌나 절절했던지 기억에 남아요.”

○ MBA식 결혼 전략

혼테크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제 친구가 한 명언이 있어요. 돈, 집안, 외모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절대로, 동시에 두 가지를 얻기도 불가능하대요. 결국 그녀는 돈을 선택했지요.” 회사원 안모씨(31·여)의 말이다. 그 친구는 화려한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학력 전문직에 미모를 갖춘, 30대 중반 이상의 이른바 ‘하이 미스’들은 ‘능력 있는’ 이혼남을 선택하기도 한다.

퍼플스의 김현중 사장은 “최고 엘리트 신랑감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아직 결혼을 안 했다면 어린 여성을 찾는다”며 “자신의 눈을 낮추느니 차라리 나머지 조건이 좋은 이혼남과 결혼하는 하이 미스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남자 회원인 김모씨(31)는 원하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교사나 공무원 아내를 원하는 김씨는 담당 매니저에게 자신의 이상형과 소개시 주의사항을 담은 장문의 e메일을 보냈다. 또 미팅 다음날이면 ‘OO일에 누구를 만났는데 뭐가 어땠고 OO일에는 누구를 만날 것’이라는 식의 보고서를 보내며 미팅 과정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수정한다.

구체적인 혼테크 전략들은 책에서도 엿보인다.

최근 출간된 ‘32세, 남편을 찾아라-하버드 MBA식 결혼전략’은 싱글 여성들에게 자신을 마케팅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외모를 최고로 가꿔라 △자신을 차별화하는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라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것을 시도하라 △아는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소개팅을 부탁하라 △이상형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등.

출판사인 북폴리오측은 “미국와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어도 국내에 들여올 때는 고심을 했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놀랍다”고 밝혔다.

○ 업그레이드, 진실 혹은 거짓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필수. 껍데기만 바꾸는 ‘거짓 업그레이드’도 많다.

주부 최모씨(50·경기 성남시 분당구)가 전하는 여고 동창의 얘기.

“걘, 딸들 시집 잘 보내는 게 유일한 목표였어요. 빚 잔뜩 내서 압구정동에 50평대 아파트를 전세 냈고 가짜 보석과 A급 ‘짝퉁’으로 딸들을 치장시켰죠. 결국 ‘마담 뚜’를 통해서 딸 둘을 모두 준재벌급 집안과 결혼시켰죠. 친구들이 처음에는 다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는데 나중에 그렇게 되고 보니 ‘그래도 성공했다’고들 했어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한 커플매니저는 “소형차를 가진 남성에게 여유가 되면 차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충고했는데 차를 바꾸니 진행이 잘되더라”고 말했다.

미고 성형외과 이강원 원장은 “결혼을 위해 눈이나 코를 성형하는 것은 이제 얘깃거리도 안된다. 요즘엔 결혼 연령이 늦어짐에 따라 어려 보이게 하는 수술을 많이 한다”고 전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볼에 지방을 주입하는 수술. 나이가 들어 볼 살이 홀쭉해진 얼굴을 다시 통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름제거도 결혼 전 성형수술로 인기인데 이는 남녀 마찬가지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요리 꽃꽂이 등의 ‘신부수업’이 다시 인기를 끄는 최근 추세도 혼테크와 무관하지 않다. 최상류층 집안에서는 여전히 전업주부를 원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글=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정인성기자 71jis@donga.com

▼진화심리학이 보는 결혼의 조건▼

결혼은 사랑인가 조건인가.

당연한 결론이지만 조건을 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사랑이 없으면 금방 깨질 수밖에 없는 것도 확실하다.

흔히 사람들은 ‘결혼은 현실이다’라고 말하며 ‘계산’을 합리화한다.

경제학의 분석영역을 결혼 이혼 자살 인종차별 등의 인간행위에까지 확대시킨 것으로 유명한 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인간은 경제적인 사고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결혼을 하므로 결혼은 개인에게 실리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도움이란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물질적인 것도 포함한다.

즉 부(富)의 증대도 결혼의 한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도 진화론에서 말하는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이 오랫동안 작용한 산물이라고 보는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이 왜 사랑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는지 설명해준다.

결혼, 즉 ‘짝짓기 시장’에서 남성의 경우 자식을 잘 낳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여성의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신경을 쓰고, 여성은 가족을 잘 돌볼 수 있는 남성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를 보는 것은 이성적인 것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좋은 조건들이 짝을 고르는 데 최소한의 기준을 제공하긴 해도 결국 어떤 짝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며 “조건 때문에 선택한다면 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만났을 때 똑같은 이유로 떠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진화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짝짓기 시장을 전세 시장에 비유했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서로 최고의 상대를 원하지만 결국은 만나본 사람, 둘러본 집 중에 최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계약이 성사된 후 상대방이 갑자기 계약을 파기할 경우 큰 손해를 보게 되므로 양자는 그에 대비해 계약을 파기한 쪽이 손해를 입도록 하는 내용의 임대계약서를 작성한다.

물론 짝짓기 시장에서는 상대방을 차버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법은 없다. 다만 그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인간은 상대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같이 있어 줄 만큼 비합리적인 감정인 ‘사랑’을 스스로 끌어들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사랑은 최적의 배우자를 만나려는 인간이 장기적인 결합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서로에 대한 헌신을 보증하는 장치로서 오랫동안 발달시켜 온 정신현상의 하나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당신이 재산이 많아서(또는 아름다워서) 결혼하고 싶다’보다 ‘당신을 사랑하니까’가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