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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콜래트럴’… 톰 크루즈, 냉혈 킬러 변신하다

입력 | 2004-10-14 16:44:00

톰 크루즈가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차가운 매력을 발산하는 액션 스릴러 '콜래트럴'. -사진제공 UIP코리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평범한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는 어느 날 빈센트(톰 크루즈)를 태운다. 빈센트는 하룻밤에 다섯 곳을 들른 뒤 다음날 새벽 공항에 가야 한다며 택시를 전세 낸다. 맥스는 곧 끔찍한 살인 장면과 맞닥뜨리게 된다. 빈센트는 마약조직에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과 담당 검사 등 5명을 살해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온 살인청부업자였던 것. 맥스는 여기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더 깊이 빠져든다.

15일 개봉되는 ‘콜래트럴(Collateral)’을 ‘톰 크루즈 주연의 액션 스릴러’ 쯤으로 예단하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톰 크루즈는 착하거나 ‘쿨’하지 않으며, 액션은 화끈하고 뒤끝이 짜릿한 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리’(2001년) 이후 3년 만에 마이클 만 감독이 내놓은 이 영화는 한 킬러의 화려한 직업기술을 망라하는 데 관심이 있지 않다.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와 바로 뒤에 앉은 킬러가 벌이는 심리의 시소게임을 마치 운명적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선악의 이분법보다는 악의 영향을 받은 선이 강화돼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한다. 킬러는 운전사를 수렁에 빠뜨리는 ‘독’인 동시에 억눌려 살아온 택시 드라이버의 소시민적 설움을 폭발시키고 그를 용감하게 개조하는 ‘약’이기도 하다.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처음 악역을 맡았다. 머리칼과 수염과 슈트를 회색으로 통일한 그는 몰인정한 유기체처럼 묘사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차갑고 쓸쓸한 이미지 속으로 제대로 녹아들어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얼굴인 그를 ‘뭔가 특별한 악당’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는 빈센트가 쏟아내는 근사한(하지만 단지 영화적일 뿐인) 직업철학이다.

“60억 인구 중 뚱보 한 명 죽었을 뿐이야.”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환경오염으로 죽어가지만 환경단체에 관심이라도 준 적 있어?” “억만 개의 별이 있고 우린 한 점에 불과해.”

마이클 만 감독은 톰 크루즈라는 흥행 보증수표를 갖고 더 젊고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졌을 법하지만, 빈센트라는 극중 캐릭터와 배우 톰 크루즈의 고정 이미지 사이에서 황금비율을 찾는다. 그건 차갑고 잔혹한 한편 뜨겁고 섹시한 맛이다. 하지만 이런 절묘한 균형감각은 불행히도 클라이맥스 지점에서 무너진다. 빈센트가 마치 ‘터미네이터’라도 된 것처럼 두 눈을 뒤집어 뜬 채 로봇의 걸음걸이로 맥스와 여검사를 뒤쫓는 순간, 빈센트는 더 이상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킬러’가 아닌 ‘여느’ 살인마로 하향 평준화된다.

‘콜래트럴’은 칭찬보다는 이유 있는 변명이 더 어울리는 영화다. 이 영화 속 사건이 갖는 응집력과 템포가 다소 느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이 영화가 목적한 것은 사건의 시원한 해결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외로운 캐릭터들과 황량한 도시가 끈적끈적하게 포개어지는 바로 그 순간의 독특한 무드인 것이다. 전작 ‘히트’에서도 그랬듯이 마이클 만 감독은 액션의 폭발성보다는 액션에다 인물의 내면 심리를 투사시키는 쪽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는 컷과 컷을 속도감 있게 이어붙이는 대신 순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총알 한 발 한 발, 동작 하나 하나의 무게와 의미를 관객이 곱씹도록 만든다. 마이클 만의 영화가 비록 톡 쏘는 맛은 떨어지지만, 시종 강력한 쓸쓸함의 에너지를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덮어두고라도, 이 영화에서 진정 눈을 뗄 수 없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작은 움직임에서조차 빼놓지 않고 부각되는 톰 크루즈의 탄탄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다. 그의 가슴과 엉덩이는 그 자체로 강렬한 스펙터클이다. 그가 선하든 아니면 악하든.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