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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영화파일]‘2046’의 왕자웨이 감독

입력 | 2004-10-14 16:44:00

사랑한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왕자웨이 감독의 '2046'. 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랑한다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명상.’

미국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가 영화 ‘2046’을 두고 한 이 말은 왕자웨이 영화 전체를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왕자웨이 영화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말은 없을 듯싶다. 조금 더 이 말을 음미해 보자면 왕자웨이의 영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거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혹은 ‘엇갈리는’ 사랑에 대한 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콜리스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콜리스가 보기에 왕자웨이의 영화는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늘 사랑하는 척, 혹은 사랑이란 환상에 빠진 척 살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아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그것 참, 쓸쓸하고 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된 왕자웨이의 신작 ‘2046’은 사랑이라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는, 그 스산함의 최고치를 나타내는 영화다. ‘2046’의 ‘2046’은 영화 속 주인공인 초우(량차오웨이)가 머무는 1960년대 홍콩의 한 호텔 객실번호. 신문기자이자 무협소설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초우는 2046호에서 수리첸(궁리)이란 여인을 만나 밀회를 즐긴다. 초우는 2046호에서 벗어나 때로는 싱가포르에서 루루(류자링)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가벼운 연애를 하기도 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처럼 2046호에 투숙한 고급 콜걸 바이 링(장쯔이)과 기묘한 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호텔 사장의 딸인 왕징웬(왕페이)도 늘 그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우의 삶은 따뜻하지 않다. 그에겐 늘 빈 공간이 기다릴 뿐이며 모든 것이 변화하듯 사랑은 그의 삶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의 손길은 늘 여인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멈춰서고 만다.

왕자웨이 감독

‘2046’은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느끼는’ 영화다. 흔히들 이 영화가 전작인 ‘화양연화’의 속편이라고들 얘기하고, 그래서 ‘화양연화’를 보지 않았으면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들 한다. 물론 ‘화양연화’를 봤다면 영화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2046’은 ‘화양연화’와 동시에 기획되고 또 어느 부분은 동시에 촬영된 것이기도 하니까.

‘화양연화’와 ‘2046’의 내용을 합쳐서 연대순으로 다시 조각을 맞추면 전체 이야기의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런 퍼즐게임은 오히려 영화의 느낌을 죽인다. 그럴 필요도 없다. ‘2046’에서 왕자웨이가 비주얼이나 대사보다 음악을 여타의 전작에 비해 훨씬 더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 남자의 연애담이 아니라 한 남자의 마음속에 담겨진 사랑의 상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지독한 애증이기 때문이다.

‘열혈남아’에서 ‘아비정전’ ‘중경삼림’ 그리고 ‘동사서독’에 이르기까지, 또 ‘타락천사’에서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 그리고 이번 ‘2046’까지. 어쩌면 왕자웨이는 달랑 시나리오 한권만을 손안에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들로 얘기들을 꾸려 왔지만 왕자웨이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사랑의 문제, 이룰 수 없었고 엇갈려 왔던, 그래서 이제는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까지 생각하게 된, 사랑이라는 주제 단 하나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한 가지 주제를 그는 8편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시키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왕자웨이가 단 한 가지의 답을 찾아 길을 헤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그의 예술적 방황에 기꺼이 동참해 왔던 것은, 그나 우리나 아직도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과연 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변하는 것일까, 이 순간을 영원히 가져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이 세상의 영원한 비밀이자 숙제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왕자웨이가 인도하는 사랑의 길은 길고도 한참은 굽은 길(long and winding road)이다. 로맨스의 끝에는 아름다움이나 행복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왕자웨이는 자꾸 일깨워 준다. 그래서 선뜻 사랑을 하고 싶은 용기를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얘기하는 사랑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비록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온몸을 불사르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2046’의 연인들에게 축배를.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