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은 국가경쟁력 추락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올해 5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조사 대상 60개국 중 35위로 평가한 바 있다. 지난해보다는 2계단 올랐지만 2000∼2002년에 비해선 6계단 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객관적 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소수 기업인의 누워서 침 뱉기 식 평가 때문에 순위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2년 102개국 중 25위에서 2003년 18위로 올린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결과엔 왜 눈을 감느냐”고 공박했다.
바로 그 WEF가 그제 한국의 국가(성장)경쟁력을 104개국 중 29위로 11계단 낮춰 채점했다. 주된 이유로 경기침체 지속,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비효율적이면서 예산을 낭비하는 정부, 노동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 문턱 높은 금융시장, 부정부패, 낮은 근무성실도 등을 꼽았다. 아시아 국가 중엔 대만(4위) 싱가포르(7위) 일본(9위) 홍콩(21위) 등이 우리보다 앞섰다.
WEF의 평가순위 추락에 대해 조윤제 대통령경제보좌관은 “거시경제환경이 나빠졌고, 가계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문제 때문에 신용카드의 대출한도를 낮춘 게 주원인인 것 같다”며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왜 국가경쟁력이 떨어졌는지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어느 정도 걱정하는 것을 지나친 비관으로 보는지 모르지만, 국가경쟁력이 1년 만에 11단계나 추월당했으면 비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WEF의 평가는 경제성장의 지속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불안한 상황이다.
WEF 평가의 3대 지표 가운데 그나마 기술경쟁력은 6위에서 9위로 떨어지는 데 그쳤지만 대만은 2위, 일본은 5위다. 특히 거시경제의 안정성은 23위에서 35위로 12단계나 폭락했다. 국가채무가 급증하고 재정 능력이 불안하며 노동부문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기침체가 중소기업 자금난, 신용불량자와 실업 증가 등과 맞물린 상황이 반영됐다는 풀이다. 공공부문 경쟁력은 36위에서 41위로 하락했다. 시장경제 활동에 대한 정치적 제도적 지원이 후퇴하고, 정책이 시장 및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못한 점이 지적됐다. 공공부문 경쟁력은 행정 및 공공기관의 투명성, 법적 안정성, 사유재산 보호 등 정부가 주된 책임을 져야 할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와 함께 노사협력은 93개국 중 92위, 정치인 신뢰도는 104개국 중 85위였다. 종합순위에 반영되지 않은 입법기관의 효율성(81위), 농업정책 비용(77위) 등을 감안하면 국가경쟁력의 현실은 더 어둡다.
이번 WEF의 평가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업 노사(勞使) 등이 무엇에 주력해야 국가경쟁력을 살려낼 수 있을지를 말해 준다. 이는 국내외 전문가와 언론이 줄기차게 지적해 온 내용들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 여당은 이제 더는 근거가 약한 장기(長期)낙관론과 뜬구름 잡는 개혁론으로 시간을 허송하지 말아야 한다. 정쟁(政爭)과 갈등 조장, 비판 봉쇄에 소진하는 역량을 당장 경쟁력 추락 요인을 개선하는 데로 돌려야 한다. “정쟁으로 지새우면 중진국(中進國)에서도 탈락할 것이다”, “분배 중심의 정책은 잘못된 길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눈을 돌려라”는 세계의 경고와 충고를 들어야 한다. 국가경쟁력에 국민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