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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김영봉]평준화 행로의 끝

입력 | 2004-10-14 18:46:00


부산의 고등학교 교장 한 분이 편지를 보내 왔다. “학교에서 참교사들은 교재 연구도 안 하고 학생 생활지도도 안 합니다. 열심히 하는 교사는 시대에 떨어진 ‘바보’라고 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은 ‘범생’이라고 따돌립니다. 학생들은 교사가 꾸짖으면 ‘공부 잘한다고 출세하느냐’고 항변합니다. 학교는 있으나 스승도 제자도 교육도 없는 풍토입니다.”

▼노력할 필요없는 교육현장▼

오늘의 집권자들에게는 건국 이후 50여년이 창피하고 청산해야 할 역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 대열의 나라가 수백 배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른바 민주전사들이 권력을 장악하게까지 민주화됐으니 이보다 복된 역사가 어디 있겠는가. 기적 같은 이런 행운이 수많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중 유독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조상들의 힘들었던 삶을 후대가 보상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이 이런 발전에 원동력이 됐음은 세계가 모두 아는 사실이다. 1960, 70년대 당시 기성세대는 얼마나 힘겹게 2세 교육에 투자했는가. 부모는 소 팔고 논 팔고 몸을 던져 희생하며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당시는 중학교, 고교, 대학, 기업 모두가 시험 봐서 들어가던 때였다. 사람들은 ‘소 돼지에게나 매기는 등급 도장을 학교에도 매기는지’도 모르고 오직 경쟁에서 이겨야만 더 잘사는 것으로 알았다. 그 결과 모두가 성장 열차에 올라타 적은 사람은 적은 대로,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기회와 소유를 불렸던 게 사실이다.

민주평등의 불길에 따라 평준화가 온 나라를 지배하더니 급기야 학교교육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전쟁터가 되다시피 했다. 요즘 불거진 고교등급제는 사회 귀족을 세습하는 신판 계급제도이고 아비와 자식을 엮는 연좌제라고 한다. 부산의 교장선생님이 생각하던 교육은 이제 학교에서 사라졌다. 뻔한 학력차를 없다 하고 공부 안 해도 출세할 수 있다고 하는 기만과 호도의 논리를 가르치는 곳이 교육의 장(場)이 됐다.

옛날에는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 모두 한 등이라도 올리려고 애를 썼다. 시험 때면 밤 새워 벼락치기 공부를 했고, 선생은 한눈파는 아이들에게 매를 들곤 했다. 그래서 대학생의 태반이 초중고교생의 국어 영어 수학 학습을 도우며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공립, 사립, 일류, 이류 등 다양한 학교에 비슷한 학력 또래가 다녔다. 창피한 학생도, 권토중래(捲土重來)하려는 학생도 있었지만 일류에 못 간 처지를 그렇게 원망하지는 않았다. 명문은 지방에도 수두룩했고 좋은 교장이 오면 다음 해 서울대 합격자가 부쩍 늘었다. 벽촌이라도 머리 좋은 아이들은 어려운 중학시험에 합격해 좋은 교사 밑에서 돈 안들이고 일류대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런 시장이 없어진 뒤 어떤 교육이 들어섰는가. 나라가 배정해 준 천차만별의 학생들이 한 반에서 수업을 받는다. 수업시간에 우등생은 시시해서 자고, 열등생은 배워도 모르므로 잔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의 반 이상이 100점을 받고 선생이 미리 시험답안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가 이 모양인데 무엇 때문에 학생이 공부하고 선생은 교재를 개발할 것인가. 반면 특목고나 강남의 세칭 ‘귀족고교’에서는 무자비하게 아이들을 경쟁시켜 학력을 올린다. 학부모 등쌀에 학교에는 특정 교원단체가 발을 못 붙이고, 오전 2시까지 과외수업을 시킨다. 이런 차이를 일부 반영한 대학이 숨기고 변명하다가 들통이 났고, 그들의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수많은 ‘못 가진 자’가 성을 냈다. 노력하는 자에게나 노력할 형편이 못되는 자에게나 참으로 할 말이 많은 나라인 것이다.

▼경쟁과 도전이 죽은 교육▼

이런 교육현장에서 평준화교육의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재빨리 대학입시에서 본고사와 고교등급화를 불법화하기로 했다. 또다시 우리 학생의 학력저하는 계속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학력 격차와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특정 교원단체의 부추김도 극성을 부릴 것이다. 경쟁과 도전이 죽은 교육은 국가사회 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못하고 국민 누구의 미래도 보장 못할 것이다. 포퓰리스트 반(反)시장주의가 아니라는 정권의 주장 또한 계속될 것이다.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