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53·사진)에게 소나무는 생명의 나무다. 1993년부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나무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을 해왔지만 최근 3년처럼 절실한 애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전 교수는 3년 전 대장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문득 소나무가 다가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10년 전에 이미 가봤던 소나무 서식지를 수술 후 원기를 채 회복하지 못한 몸을 이끌며 2년 동안 다시 돌아봤다. 땅을 갖고 있어 매년 종합토지세를 내는 경북 예천군 석송령 소나무를 꼼꼼히 조사했고,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국 양백(소백산과 태백산 일대) 지역의 소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불상이 있는 교토 고류지(廣隆寺)를 세 번이나 찾았다. 소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갔다.
전 교수는 당시의 심정을 책에 이렇게 표현했다.
“용기와 희망이 절실히 필요하던, 곤궁하던 세월에 소나무가 안겨 준 불가사의한 치유력은 얼마나 신묘했던가.”(272쪽)
한국은 대대로 소나무의 나라였다.
애국가 2절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조선 태종 때 지기(地氣)를 보완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서 집중적으로 심은 것이고,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도 모두 소나무로 지었다. 세금으로 바치던 쌀을 싣고 서울로 오던 조운선(漕運船)과 거북선 판옥선 등 전함도 소나무로 만들었고, 조선백자를 굽던 가마에도 꼭 ‘영사’라 불리던 소나무 장작을 땠다.
그러나 지금은 궁궐 등 문화재를 복원하려고 해도 적합한 소나무를 찾기가 힘들다. 1960년대 남한 삼림의 60%를 차지하던 소나무 숲은 오늘날 항공사진으로 촬영해 보니 25%로 줄었다.
“소나무 씨는 맨땅에 떨어져야 잘 자랍니다. 과거에는 솔잎이나 솔가지를 주워 땔감으로 많이 써서 소나무가 자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활엽수의 낙엽에 덮여서 소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여기에 솔잎혹파리 등 병충해도 심했지요.”
그렇다고 전 교수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30년째 국민들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고 있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소나무는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들어주는 상징적인 생명문화유산입니다. 물론 한국의 모든 숲을 소나무로 덮자는 것은 망발이지요. 다만 문화재 복원용 소나무라도 충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