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회사에 도전하라/이상진 지음/223쪽 1만원 한스미디어
화학공학 박사인 L씨는 영업사원으로 발령을 받아 D회사와 거래를 트기 위해 구매부서를 찾았다. 명함 교환은 꿈도 못 꾸고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1주일에 두 번은 찾아갔다. 두어 달 들락거렸을 때 구매과장이 “어이∼” 하고 불렀다. 빵을 먹고 있던 구매과장은 건네받은 명함으로 책상 위에 흩어진 빵부스러기를 훑어내더니 명함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곤 명함을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이런 수모를 겪어가며 D회사에 마침내 납품하게 됐다. L박사는 미국계 회사에 입사하면서 D사를 개척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기에 이를 실천하기 위해 수도(修道)하듯 매달린 것이었다.
L박사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4년간 근무하다 1991년 미국계 회사인 한국다우케미칼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에 적응하려면 어떤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지를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잘 소개하고 있다.
임직원들은 ‘약속의 공포’를 느낀다. 회사에다 자신의 목표를 ‘약속’하는데 이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실천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약속을 못 지키면 연봉,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한국 회사에서처럼 적당히 봐주지 않는다. 저자가 자기 명함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매과장에게 미소를 지은 것도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인내심 때문이었다.
영어회의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발표내용을 미리 정리하고 녹음기에 녹음해서 들어본다. 5분간 발언 분량 정도는 달달 외운다. 미국인도 5분 스피치는 외우며 준비하는데 영어에 서툰 한국인이야 더더욱 사전대비가 필요하다.
시간관리를 잘 해야 한다. “바빠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시간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하루 일정을 분 단위로 정리하는 ‘플래너’라는 수첩을 잘 활용해야 한다. 저자는 플래너 활용법을 배우기 위해 홍콩에 1박2일 출장을 가기도 했다.
미국인 회사에서 직속상관인 보스의 권한은 막강하다. 부하의 연봉, 경비 결제, 진급 여부 등을 결정한다. 부하는 보스를 ‘하느님의 친구’로 생각해야 한다. 보스 앞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재롱둥이가 된다. 보스와 함께 식사할 때 보스보다 먼저 수저를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한국의 예절과 마찬가지다. 보스와 궁합이 잘 맞으면 세상 살 맛이 나지만 코드가 맞지 않으면 ‘재앙’이란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미국기업들은 은연중에 ‘귀하는 세계 최고의 사원’이라는 인식을 심는다. 일류 호텔에서 재우고 고급 식당에서 음식을 사주며 비행기 좌석도 비즈니스석에 앉힌다. 한국 신입사원들이 극기훈련을 위해 구령에 맞추는 풍경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것. 미국 회사를 이해하면 한국 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 읽는 데 부담이 없으면서도 적잖은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직장인의 열정에 감동도 느낄 수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