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어제 정책 의원총회에서 국가보안법, 과거사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등 ‘4대 법안’ 관철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일정대로라면 다음 달 초 국회에 상정돼 늦어도 연말 전까지는 처리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들을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서 대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과반 의석의 힘을 믿고 날치기라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재고(再考)해야 한다. 처리 과정에서 예상되는 국회 파행과 정국 경색으로 가뜩이나 힘든 민생(民生)에 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워서야 되겠는가. 지금은 이런 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때도 아니다.
‘개혁 법안’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쟁점 법안’일 뿐이다. 보다 진지하게 논의를 계속해 힘들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법안이지 당장 통과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결딴이 날 법안은 아니다. 국보법만 하더라도 국민의 80%가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의 법안이라고 해서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법안의 일부 조항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反)개혁적이다. 언론관계법안만 하더라도 특정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지구상에 유례가 없는 조항을 담고 있다. 사립학교법안도 사학(私學)을 통째로 특정 교원집단에 넘겨줘 학교교육을 온통 이념화, 하향평준화할 생각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법안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고 시장경제에도 맞지 않는 이런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은 여권이 여전히 자신들만이 선(善)이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악(惡)이라는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계 일각에선 벌써 “이들 법안으로 야당과 보수층의 사지(四肢)를 묶어 놓고 여권의 궁극적 목표인 주류세력 교체에 착수할 것”이란 얘기가 떠돌고 있다.
진정한 ‘개혁 입법’이라면 이렇게 가선 안 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법안을 놓고 제1 야당인 한나라당과 대화다운 대화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집권 여당이라면 법안을 강행 처리할 명분도 역량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