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 간다. 성매매 자체를 ‘범죄’로 취급하는 이 법의 시행 이후 ‘여성의 인권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는 주장과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라는 반론이 갈수록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법 시행 한 달을 맞아 본보는 달라진 성매매 실태와 법 시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외국의 사례와 각계의 의견 등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해 보는 시리즈 기사를 5회에 걸쳐 싣는다.》
본보 취재진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 실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15, 16일 서울의 집창촌과 유흥가, 주택가 인근의 업소 등을 집중 취재했다.
그 결과 그동안의 경찰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으며 이전과 비교할 때 수법이 훨씬 교묘하고 은밀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은 특별법 때문에 생겼다”=16일 오전 1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부근 집창촌인 속칭 ‘588’ 일대. 업소들의 불이 모두 다 꺼진 골목에서 흰색 중형차 한 대가 취재진 앞에 섰다.
차 안에 있던 20대 남자 두 명은 “우리 가게에 가서 노래 부르고 아가씨랑 자면 된다”며 “원래 아가씨 한 명에 12만원인데 요즘은 단골 확보 차원에서 10만원에 해 준다”고 말했다. 청량리를 출발한 중형차는 강남구 신사동의 한 평범한 빌딩 앞에 멈췄다.
취재진이 도착한 신사동 빌딩 지하의 노래방은 간판도 없었다. 룸이 모두 5개였으나 급조한 듯 노래방기계가 없는 방도 있었다. 잠시 후 각각 1978년과 1982년생이라는 야한 옷차림의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왔다.
아가씨들을 관리한다는 ‘보도실장’ 이모씨(28)는 “청량리에서 데려온 손님들이 여기서 아가씨와 술을 마신 뒤 술값과 ‘2차’ 비용을 같이 계산하고 서초구 서초동 여관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관까지 자신들이 차로 태워다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2차 비용은 흥정 때와는 달리 15만원이라고 했다. 이씨는 “법 시행 전 588에서 받던 가격에 비해 9만원이 올랐다”며 “위험부담 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 전 문을 열었으며 이런 곳이 강남에만 수십 군데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장님이 성매매특별법으로 청량리 일대가 전멸될 것을 예상해 미리 아이템을 구상한 것”이라며 “한 마디로 우리 집은 법 때문에 생긴 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돈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 성매매를 한다”며 단속을 비웃었다.
한편 청량리 골목의 한 모텔에서도 어렵지 않게 아가씨를 부를 수 있었다. 40대 여관 주인은 “단속에 안 걸린다”고 장담하며 “다만 단속 전보다 가격이 2만원 올랐다”며 8만원을 요구했다.
40분가량 지난 뒤 나타난 정모씨(27·여·중국 조선족 출신)는 “법 시행 후 장사가 너무 안 돼 종로와 청량리 일대의 모텔에 명함을 돌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수리 중’ 팻말에 감시카메라까지=강남구 논현동의 한 안마시술소가 위치한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과 대형 영화관이 밀집해 가족 단위의 시민이 즐겨 찾는 번화가. 15일 오후 10시반경 이 집은 ‘내부 수리중’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있었다. 그러나 문은 잠기지 않았고 안에서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사장 김모씨는 “사방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손님이 들어오는 걸 알았다”면서 “이 일대 업소의 직원들이 돌면서 경찰 단속을 함께 체크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장을 따라 들어간 곳은 얼핏 대중목욕탕처럼 보였다. 그러나 숨겨진 버튼을 누르자 사물함으로 보이던 벽이 열리며 침실 4개가 나타났다.
10여분 후 나타난 이모씨(24·여)는 특별법 시행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법 시행 후 영업 중엔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조금 불편하다”며 “한 달에 250만∼300만원이던 수입이 150만∼200만원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시행 초기 잠깐 쉬었던 성매매 여성들을 최근 업주들이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 취재진과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이씨에게는 ‘다음주에 장안동에서 크게 개업하니 연락하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관악구 봉천동의 한 유사성매매 업소도 “경찰과 다 얘기됐으니 걱정 말라”며 손님을 받았다. 한 여성 종업원은 “불편하면 따로 연락해 우리 집에서 만나거나 손님 집으로 찾아갈 수도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기도 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