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목적이 정당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취해야 한다는 지나친 목적의식에 모두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결국은 목적의 순수성마저 의심받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번에 발표된 여당의 언론개혁 관련 법안 또한 그 한 예라 생각된다. 현 정부여당이 집권 초기부터 시종일관 우리 사회의 ‘악의 축’으로 규정해 왔던 일부 ‘족벌언론사’들의 횡포를 종식시키기 위한 법안이 발표된 것이다.
▼규제만능… 고민한 흔적 안보여▼
14일 여당이 발표한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언론자유를 실현한다는 미명 아래 정치권력으로부터 통제받거나 보호받는 언론이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해 왔는가를 애써 모르는 체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이 법이 원하는 목적을 제대로 성취할 수 있겠는지 혹은 부작용은 없겠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 사회의 발전은 질서유지에 필요한 제도적 틀과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율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언론은 정도를 넘어선 심각한 불공정경쟁과 사실보도와 의견이 혼재된 편집문화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들을 ‘법적 규제’와 ‘격려성 지원책’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권위주의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
과도한 규제는 자칫 언론사의 존재목적을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수준으로 격하시켜, 결국 언론의 자유와 독자의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보다 훨씬 오랜 기간 언론의 병폐를 경험해 온 나라들이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단기간에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자율규제에 의존하고 있는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규제는 원하는 목적이 성취될 가능성, 즉 규제의 실효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신문시장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그 같은 인위적인 시장 개편이 곧 언론의 자유와 독자의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공정거래법보다 더 엄격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의 합법성 여부는 고사하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분류된 신문사들에 완전히 상반된 규제와 지원이라는 이중정책을 취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신장하기보다 도리어 모든 신문사들에 눈치 보기만 성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지나치게 목적의식에 경도된 과도한 규제지상주의가 왜 방송매체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방송은 여러 이유로 사회적 통제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적용되는 매체다”라는 언론학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를 여당 의원들만 모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이런 무지가 공공적 소유형태만이 곧 공공 이익에 부합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영방송은 무조건 공익적인가▼
공적 소유구조의 가면을 쓰고 상업방송보다 더 상업적인 ‘공영방송사’들은 어쨌든 공익적이고, 개인이 소유한 ‘민영방송사’와 일부 ‘족벌신문사’들은 무조건 반공익적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공적 소유형태를 가진 ‘무늬만 공영방송사’들의 통제받지 않은 권력이 곧 시청자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고 진정 공익적인가도 엄격히 생각해볼 일이다.
이번 여당의 언론개혁법안을 보면 지나친 목적의식과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얼마나 심각한 정책적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소유구조 개선과 여러 통제 장치를 통한 언론개혁이 더 큰 병폐를 낳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