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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당론 확정

입력 | 2004-10-18 01:23:00


열린우리당이 17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후 대안으로 형법상 내란죄 부분을 보완하는 형법보완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입법 추진과정에서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한나라당과의 한 차례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형법보완안=열린우리당이 논란 끝에 이날 확정한 형법보완안은 ‘내란목적단체’ 규정을 만들어 북한과 관련한 이적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형법 87조(내란죄)에 ‘국토를 참절 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고자 폭동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전조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라는 2항(내란목적단체 조직)을 신설했다.

‘내란목적단체’는 현행 국보법의 ‘반국가단체’를 대체한 개념. 그러나 현행 국보법의 이적단체 규정은 삭제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예를 들어 ‘사로맹’과 같은 단체는 과거 그다지 폭력적이지 않은 단체였지만 단지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반국가단체로 처벌받았다”며 “‘폭동’이라는 부분을 삽입한 것은 이 같은 사례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형법 98조의 간첩죄도 ‘적국(敵國)’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군사상의 기밀을 누설하는 행위에서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군사상의 기밀을 누설하는 행위로 바꿨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이 조항은 북한을 의식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에 간첩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내란목적단체 조항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국보법에서 반국가단체를 위한 활동의 처벌 조항인 ‘목적 수행죄’는 별도의 보완 없이 형법 90조 ‘예비·음모·선동·선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문제점=그러나 현행 국보법의 여러 조항을 대체 또는 보완하지 않고 삭제함으로써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현행 국보법 2조를 삭제한 것은 북한을 사실상 ‘정부’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경우 국보법상 이적단체도 구체적 폭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는 한 처벌이 불가능해진다.

국보법 6조(잠입 탈출), 7조(찬양 고무), 8조(회합 통신), 10조(불고지죄) 등이 대표적 삭제 조항. 이들 조항이 없어지면 한국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거나 관련 서적 및 유인물을 판매 배포해도 처벌할 수 없다. 거리에서 인공기를 흔들고 다닌다든지 ‘폭력적이지 않은’ 친북 집회를 열어도 마찬가지다.

또 북한 방송을 녹음해 방송한다거나 북한 관련 유인물을 배포해도 처벌하기가 어렵다. 간첩인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거나 친북활동을 위해 북한을 드나드는 행위 역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경우처럼 북한과 팩스를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폭동을 주도한 집단과 행동을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거나 내란 행위를 돕겠다는 명확한 의사가 없이 그렇게 했다면 역시 처벌하기 힘들게 된다.

확정안은 국토 참절이나 국헌 문란을 위한 폭동 등 중대하고 구체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보법 5조(금품 수수)에 대한 보완책도 없어 북한의 자금으로 한국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이와 같은 위협이 없다면 처벌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천 대표는 “이 같은 행위들이 명백하게 내란목적단체와 연관이 돼 있다는 증거가 있다면 형법으로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며 “이는 잘못된 지식을 근거로 한 오해”라고 반박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국가보안법 폐지에 따른 형법보완 규정재87조의 2(신설)내란목적 단체 조직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고자 폭동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전조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단 형을 감경할 수 있다.제89조(수정)미수범전 3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제90조(수정)예비, 음모,선동, 선전①제87조(내란) 내지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 단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면제한다.②제87조(내란) 내지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의 죄를범할 것을 선동 또는 선전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제98조(수정)간첩①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 간첩하거나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의 간첩을 방조하여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군사상의 기밀을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검찰 “간첩 단서잡아도 손 못쓸 판”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형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검찰에서는 당장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국보법상의 ‘반국가단체’ 조항 폐지는 북한을 사실상 ‘정부’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각종 선전선동으로 북한을 돕더라도 구체적인 폭동 계획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형법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국보법 남용 사례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국보법 존재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큰데 너무 많은 조항을 삭제한 것 같다”며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한다거나 인공기를 게양하고 집회를 열어도 마땅히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 부장검사는 “이적 표현물을 몰래 갖고 있거나 김일성을 찬양한 사실 등이 간첩 수사의 단초인데 이 조항이 빠지면 어떻게 간첩 수사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고위 간부는 “국회가 할 일이지만 어떤 형태를 취하든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