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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월드]獨 정비 명장 따낸 ‘자동차 박사’ 전인선 씨

입력 | 2004-10-18 16:06:00

‘마이스터’ 전인선 이사는 한국도 차량 등록대수가 1500만대를 넘어선 만큼 자동차 문화도 선진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 이사가 AS지점에 들어온 차를 점검하고 있다.-부산=최재호기자


부산 사상구 감전동 BMW 애프터서비스 센터에 가면 흰 가운을 입은 초로(初老)의 신사를 만날 수 있다.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타임머신 차량을 만들었던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를 보는 느낌이다. 반쯤 벗겨진 머리와 깡마른 몸집, 곱슬곱슬한 헤어스타일까지 닮았다.

BMW 딜러인 HBC코오롱의 부산 AS지점장 전인선(全寅善·60) 이사.

그는 백투더퓨처의 브라운 박사와 달리 자동차 정비사다. 하지만 ‘동네 카센터’의 일반 정비공과는 다르다. 독일에서 ‘마이스터(명장·名匠)’ 자격증을 딴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올해 환갑을 맞는 나이지만 지금도 젊은 직원들이 알아내지 못하는 미묘한 고장은 그가 나서서 해결한다. 이 때문에 “꼭 전 이사님께 정비받도록 해 주세요”라는 고객도 많다.

또 그를 모르는 고객들도 차량 때문에 항의를 하러 왔다가 일단 ‘자동차 구조학’에 대한 설명부터 들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인 초보 정비사가 본 독일=마이스터는 독일 정부의 기술자 분류 가운데 최상위 등급이다. 견습생인 레어링 3년, 정식 정비사인 게젤렌 10년을 거쳐야 자격시험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1972년 당시 갓 결혼한 부인과 독일행 비행기를 탔던 그는 마이스터 자격증만 보고 밤낮없이 뛰었다. 낮에는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를 돌며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독일어를 익히기를 9년.

1981년에 드디어 필기와 실기를 모두 통과해 마이스터가 됐다. 한국에서의 정비 경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취득 기간은 4년 정도 줄였다.

이후 1994년까지 베를린에서 정비사업소를 운영하다 아프리카 보츠와나를 거쳐 1996년 BMW본사에 요청해 기술고문으로 한국에 왔다.

“나이가 들고 보니 고국이 그리웠고, 독일에서 배운 기술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기술자로서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일했던 기간이 더 긴 전 이사는 지금도 지인(知人)이나 고객들에게 종종 현지 경험담을 쏟아내곤 한다.

그가 독일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손님들이 종종 엔진을 바꿔달라고 요청한다는 것. 10년이 넘은 고물차를 갖고 와서는 엔진을 통째로 갈아달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고객 요구대로 엔진을 교환해 주는 게 자동차 회사들의 일반적인 애프터서비스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용은 고객 부담이다.

“독일 사람들은 차를 한 번 사면 50만km는 탈 생각을 합니다. 차가 오래돼 엔진이 망가지면 엔진을 바꿔서 더 탑니다. 차를 기호품이 아닌 이동수단으로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지요.”

▽독일 마이스터가 본 한국=24년 만에 마이스터가 돼 돌아온 한국. 독일로 인력을 송출해야 했던 70년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난감하게 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자동차 문화였다.

“한국 고객들은 자동차가 ‘달리는 궁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당장 차를 교환해달라고 합니다.”

실제로 “터널 속에 들어가면 왜 라디오가 안 들리느냐”며 항의한 고객도 있었단다. 그 고객은 나중에 BMW에 장착된 라디오를 일본산 모델로 바꿔달라고 해 전 이사가 곤욕을 치렀다.

소음이나 편의장치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엔진 등 기계 장치에는 둔감한 것도 한국 소비자의 한 특징.

“독일에서는 정비소에 들어오는 차량 대부분이 엔진이나 변속기를 손봐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각종 전자장치에 이상이 있다는 문의가 많습니다.”

차량 교체 주기가 짧고 수입차일수록 중소형보다는 대형을 선호하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한국 소비자들의 차량 교체 주기는 4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는 한국 자동차 회사들이 차량 모델을 3∼4년에 한 번씩 바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독일 메이커들의 ‘풀 모델 체인지’는 8년에 한 번 정도입니다.”

한국의 자동차 문화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책임도 있다는 따끔한 충고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 차의 성능과 품질에는 높은 평가를 했다. 적어도 초기 품질에서는 외국 차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보니 제가 독일에서 배운 건 자동차 기술이 아닌 자동차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도 세계 7위의 자동차 생산회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제는 자동차 문화도 바뀌어야지요.”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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