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서 가운데 담에 이르는 높이 11.3m의 ‘그린 몬스터’로 유명한 보스턴의 명물 펜웨이파크는 1912년에 건립,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이다.
그 반대편 오른쪽 담에는 4개의 숫자가 걸려 있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등번호인 9번을 비롯해 조 크로닌의 4번, 보비 도어의 1번, 칼 야스트렘스키의 8번 등 보스턴을 빛낸 슈퍼스타의 영구 결번이다. 물론 베이브 루스의 3번은 없다.
기묘한 것은 이 4개의 숫자를 나열하면 9418이 된다는 점. 이는 보스턴이 마지막으로 패권을 차지한 1918년 시카고 컵스와 월드시리즈 1차전을 벌인 전날 9월 4일과 일치한다.
보스턴 팬들은 한때 이를 영광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후 하도 오랜 세월 동안 우승을 못하자 새로운 징크스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메이저리그에는 굳이 ‘밤비노의 저주’를 따지지 않더라도 수많은 미신이 난무한다. 기자는 3연패로 벼랑 끝에 몰린 보스턴이 18일 ‘제국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를 격침시키고 역전 끝내기 승리를 거둔 4차전을 보면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날 보스턴은 경기 직전 슬픈 소식을 접했다. 비록 잠시였지만 은퇴하던 해인 1960년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던 레이 분이 사망한 것. 최초의 3대 야구선수로 유명한 그는 애런 분의 할아버지. 애런은 뉴욕 양키스 시절인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에서 연장 11회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뜨려 우승에 목마른 보스턴을 다시 한번 울게 만들었다. 게다가 할아버지처럼 내야수인 그는 지난 겨울 농구를 하다 다쳐 양키스에서 방출되면서 보스턴과 협상 중이던 거포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뉴욕으로 발길을 돌리는 결정적인 단초까지 제공했다.
레이의 입장에선 손자인 애런이 지난해 양키스의 27번째 우승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비시즌 중 야구 외적인 일로 부상 좀 당했다고 클리블랜드로 쫓겨났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을 것. 결국 이날 보스턴의 극적인 역전승은 레이의 원혼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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