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중동 현실에 맞춰 정치 드라마로 재구성한 쿠웨이트의 연극 ‘알-햄릿 서밋’. 사진제공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햄릿, 우리는 음흉한 테러리스트가 조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당신 주변을 봐. 통상금지 명령이 사방에서 목을 조여 오는데, 세계의 지도자들은 당신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현대 중동으로 무대가 옮겨져 정치 드라마로 태어났다. 19∼21일 서울 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쿠웨이트의 ‘알 햄릿 서밋(Al-Hamlet Summit)’.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지역의 현실을 중동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중동 연극계의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로 꼽히는 술라이만 알 바삼은 이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으며, 주인공 알 햄릿까지 연기한다. 2002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프린지 1등상(연출 및 극본 부문)’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도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알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가 아니다. 적국과 대치상태에 있는 중동 어느 나라의 왕자로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 원작처럼 이 작품에서도 알 햄릿의 숙부는 형을 죽인 뒤 정권을 잡고 어머니 거트루트와 결혼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며 외세를 끌어들이려는 서구지향적인 숙부를 알 햄릿은 비난한다.
아랍어로만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단 한 사람, 무기거래상만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 지역에 대한 서방세계(미국)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 최근 국내에서도 테러 위협이 높아져 왕비와 오필리아 역을 맡은 2명의 시리아 국적 배우가 한국 비자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한때 공연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공연은 19∼21일 오후 7시반 서강대 메리홀 1만∼3만원. 02-3673-2561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