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인천 중구 신포동사무소. 주민 1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신포동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들을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신포동에서 50여년간 살아 온 박성근주민자치위원장(72)은 “구 도심권 주민 대다수가 개발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만큼 재건축 등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조례 등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포상우회 조명자 회장(49)은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인근에 위치해 있어 외국인들이 상가를 자주 찾는 만큼 상인을 위해 영어교육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한우 동장은 (53)은 “번영회 사무실 등에 상인들이 모이면 영어강사가 출장을 나가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신포동의 옛 명성을 되찾는데 안간힘을 쏟는 것은 “신포동이야말로 근대 인천 문화의 발상지였다“는 자부심 때문.
신포동은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근대 서구문명이 유입되는 길목이었다.
옛 신포동은 행정구역 분리에 따라 현재 23개(중앙동 1,2,3,4가, 해안동 1,2,3,4가, 관동1,2,3가, 항동 1,2,5,6,7가, 송학동 1,2,3가, 사동, 신생동, 신포동, 답동)의 법정동으로 흩어져 있다.
신포동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40개의 근대건축물이 있다. 예를 들어 1890년 10월 개점한 중앙동 2가의 일본 18은행은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1900년대 초 어시장으로 출발한 신포시장은 1927년 7월 1일 인천 최초의 근대시장인 공설시장이 됐다. 당시 시장 인근에는 서양식 카페와 서양물건을 취급하는 양행 등이 위치해 있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쫄면도 신포동이 발상지다.
특히 신포동에는 일제가 인천항을 통해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1930∼1940년대에 지은 낡은 창고(倉庫)가 많이 남아 있다.
인천시는 이들 창고를 2008년까지 전시·공연장을 갖춘 미술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모두 300억원을 들여 중구 해안동1가 10 일대와 해안동 2가 7 주변 1만7000m² 창고부지에 공연장, 특산물 전시판매장, 고전음악 감상실, 지역 홍보관을 만들겠다는 것.
상인들은 요즘 거리 청소와 꽃길 가꾸기 운동 등을 통해 낡은 동네라는 이미지를 벗는데 힘을 쏟고 있다. 신포시장은 내년 5월까지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바닥을 정비하는 등 환경개선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천 지역 문화시민단체인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 이종복 대표는 “신포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근대역사문화 박물관’이란 명성에 걸맞는 배후 지역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개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