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배
5년 전 유엔공업발전기구(UNIDO)의 산하기구 근무차 이탈리아 베네치아 인근 트리에스테에 처음 발을 디뎠다. 도착 다음날 첫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유치원 아이를 배웅 나온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피아노, 피아노”라고 말했다. ‘아, 여기가 예술의 나라지. 엄마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천천히’라는 뜻이란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아노’라는 말을 꽤나 자주 듣는다. 슈퍼마켓은 보통 주말 이틀 동안 문을 닫고, 은행은 오후 3시쯤 문을 닫는다. 개점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줄 서서 30분 이상 기다리기가 예사다. 그런 이탈리아가 서방선진7개국(G7) 중 한 나라가 됐고 세계적인 문화와 예술을 창조한 저력은 무엇일까. 바로 ‘천천히 정신’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의 문화유적들은 대부분 1년 내내 부분적으로 조금씩 보수·관리된다. 베네치아에 있는 수백년된 건물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섬유 의류 가구 정밀공학 등은 가족 단위 기업을 중심으로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돼 왔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하는 장인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한국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빨리 빨리’를 외치며 달려왔다. 그 피나는 노력 덕분에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지만, 지금은 ‘빨리 빨리’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을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빨리 하면서 꼼꼼히 하기란 무척 힘들다. 그렇다면 일을 ‘빨리’ 그리고 ‘대충’ 해서 문제를 만들기보다 차라리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피아노 정신’도 가르치는 건 어떨까.
장창배 한국GE 영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