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 보완안’에 대해 송광수 검찰총장이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송 총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국보법 폐지 후 형법상 내란죄로 친북 이적활동을 처벌할 경우 “실무상 법적용의 혼란과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 집행 책임자로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밝힌 것이다.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우려다. 앞으로 법안을 놓고 야당과 협상해야 할 여당으로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검찰총장의 우려를 무시했다. 천정배 대표는 “형법개정안의 내란죄로 모두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법조계와 학계로부터도 같은 지적이 쏟아져 나왔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법리적으로나, 국민 정서로나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형법 보완안’은 그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교류 협력의 대상이기 때문에 국보법을 없애야 한다고 해놓고선 형법에다 다시 북한을 ‘내란목적 단체’로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별법인 국보법 체계를 일반법인 형법에 흡수시킬 수 없다는 것도 공통된 지적이다. 북한을 전제로 만들어진 국보법과 외환, 내란 등 일반적인 경우에 적용되는 형법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 적용도 말처럼 간단치가 않다. 내란죄 구성요건은 ‘폭동’이 핵심이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을 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단순한 간첩행위나 찬양, 고무, 금품수수 등은 폭동 예비음모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처벌하기 어렵다. 내란죄가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돼 법적 안정성을 해칠 위험도 크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와 유리돼 있다는 점이다. 법은 국민의 공감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80%에 이르는 국민은 “국보법이 과거 인권침해라는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국가의 안전을 위해선 그래도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여당 안(案)에는 국민의 이런 법의식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무부처인 법무부나 검찰의 의견을 단 한 차례도 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핵심 당직자들이 “협의해 봐야 반대할 것이 뻔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국정의 책임을 공유한 집권여당이 할 말인가.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을 다루면서 주무부처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형법 보완안’을 다음달 초 해당 상임위에 상정하고 심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무부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국민의 안보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 당직자들을 힐난하거나, 당직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독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