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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폐지 갈등]묵살당한 ‘폐지반대’… 외로운 ‘안개모’

입력 | 2004-10-20 18:33:00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20일 오전 국가보안법 폐지안-형법보완안 등 ‘4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이날 제출된 법안은 국보법 폐지와 관련된 2개 법안과 언론관련 3개법안 등 9개로 11월 4일경 해당 상임위에 상정될 예정이다. -김경제기자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 결정과정에서 촉발된 열린우리당 내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20일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소속 정책조정위원장들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본보 보도(20일 A1면)를 일단 부인했다.

그러나 안영근(安泳根) 제2정조위원장이 이날 사퇴를 종용받은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몇몇 정조위원장들이 심각하게 사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물밑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당내 갈등은 겉으로만 보면 국보법 폐지 당론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개혁 노선에 대한 중도 보수 성향 의원들의 공식적인 반발이라는 성격이 짙다. 보수와 진보가 혼재된 당내의 복잡한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예견돼 온 일이라는 설명이다.

21명이 소속된 ‘안개모’는 ‘국보법의 안정적 개정을 위한 의원’ 모임이 확대 개편된 의원 모임이다.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장관이나 행정관료, 기업 대표, 검사 출신 등 당내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사람들로서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보수층도 끌어안아야 하며 불안한 개혁을 지속하지 않아야 한다 △불안한 여당, 불안한 당 정체성, 불안한 정부, 불안한 민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당의 개혁정책 전반에 걸쳐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아 이 모임을 지난달 출범시켰다.

특히 국보법 폐지와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천 대표에게 “폐지만은 안 된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폐지 당론이 확정된 이후에도 줄기차게 ‘대체입법’을 주장해 왔다.

의원총회가 열린 17일에는 천 대표와 오찬을 함께 하면서 “대체입법이 힘들면 결정을 당 지도부에 일임하는 방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하면서 막판까지 집착을 보였다.

하지만 천 대표가 이를 묵살함으로써 ‘안개모’ 소속인 안영근 이계안(李啓安) 안병엽(安炳燁) 조배숙(趙培淑) 정조위원장 등 당직 보유 의원들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

천 대표측도 ‘당직자인 정조위원장들이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이 “천 대표가 한 달 전쯤 핵심당직자들이 사적 견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당직자로서 적절한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자제를 요청한 일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특히 당내 진보적 성향의 젊은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안개모’ 소속 의원들을 비난하고 있어 자칫 이 문제가 당내 분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물론 ‘안개모’ 소속 의원들의 경우 대부분 나이가 많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 많아 당 지도부를 공개 비판하는 등 행동에 돌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안개모’ 소속의 한 의원은 “멤버가 21명이지만 뜻을 같이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30여명은 된다”며 “국정감사가 끝난 뒤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