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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장쯔이의 키스가 불타지 않는 까닭

입력 | 2004-10-20 18:39:00

영화 ‘2046’


《영화 속에 담긴 사랑과 욕망, 희망, 눈물…. 영상 이미지 아래 감추어진 의미들을 영화 담당 이승재 기자가 경쾌하고 낯선 시선으로 파헤쳐 보여주는 칼럼을 매주 영화면에 싣는다.》

차우(량차오웨이)가 접근하자 그녀는 그를 깨문다. “날 잡아봐요”하며 도망친다. “어딜 만져요!” 이어지는 키스. 섹스가 끝난 뒤 바이 링(장쯔이)이 외친다. “이 짐승, 온몸에 멍이 들었어.”

왕자웨이 감독의 ‘2046’ 중 소설가 차우와 고급콜걸 링이 첫 정사를 나누는 대목이다. 이 정도면 스크린은 후끈 달아오를 만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작 ‘연인’에서도 그랬지만, 장쯔이의 키스는 결코 불타오르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왜일까? 그건…, 장쯔이가 ‘북방계’ 미인이기 때문이다.

장쯔이는 턱이 발달했다. 두 눈(동공) 간 거리가 64mm로 다소 좁다. 뺨이 오목하게 들어가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얼굴 전체로는 요철(凹凸)이 적은 ‘북방계’다. ‘북방계’ 미인은 활동적이고 수줍은 느낌을 덜 준다. 이목구비가 위 아래로 길게 퍼져 있어 똑같은 표정을 짓더라도 얼굴에 더 많은 힘을 줘야 하는 ‘비경제적’인 얼굴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방계’ 미인의 표정은 섬세하기보다는 드라마틱하다. 감정선이 살아야 하는 애정물보다는 활극에 더 효과적이란 얘기다.

반면 ‘2046’의 전편 격인 ‘화양연화’의 장만위. 그는 ‘남방계’ 미인이다. 턱이 작고, 두 눈 간 거리가 길고, 눈이 크고, 뺨이 커서 유아적 느낌이 든다. 애정행위란 결코 지적인 행위가 아닌 만큼, 남성들은 여자의 유아적인 얼굴을 더 ‘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목구비가 조밀해 약간만 움직여도 표정이 사는 ‘경제적’ 얼굴이기도 하다.

비밀은 키스의 결정체인 입술에도 있다. 장쯔이의 아랫입술은 가장 두꺼운 중앙부분과 가장 얇은 가장자리간 폭 차가 크지 않은 ‘그믐달 형’이다. 강하고 단호한 느낌을 준다. 반면 장만위의 아랫입술은 가운데가 도톰한 ‘송편 형’이다. 입을 오므리고 있는 듯한 모양은 수줍고 방어적인 느낌을 줘 ‘수컷’들의 도전욕구를 불태운다.

배우는 몸으로도, 심지어 그림자로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2046’의 장쯔이는 이것이 부족하다. 세 번의 섹스신과 무차별 교성도 모자라 량차오웨이의 입술과 뺨과 가슴을 발로 애무하는 ‘발 섹스’까지 구사하지만, 불행히도 무용과 무술로 다져진 그녀의 발등은 너무 두껍다.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사랑의 ‘기술’이다.

‘화양연화’ 속 장만위는 한 번의 키스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찌그러진 보온병에 국수를 담아 오면서 느릿느릿 좌우로 흔드는 호리병 같은 그의 몸에선 인생의 쓸쓸함과 피로와 주체하지 못할 성욕이 묻어난다. 장쯔이는 “내 사랑을 막지 말아줘!”라며 키스를 갈구한다. 장만위는 키스 대신 참깨죽을 끓여 남자에게 권한다.

장쯔이가 과연 ‘2046’이 갈구하는 불멸의 사랑, 즉 ‘10시간 뒤에도, 100시간 뒤에도, 1000시간 뒤에도,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량차오웨이가 장쯔이를 ‘사랑’의 대상(‘2046’)으로, 장만위를 ‘상상’의 대상(‘화양연화’)으로 달리 여기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상상은 늘 현실보다 야하다.

사랑하는 장쯔이에게 말한다. 내 귓가에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대신, “당장 꺼져버려!”라며 내 뺨을 표독하게 후려쳐달라고. 그 때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라고.


sjda@donga.com

(도움말=한서대 부설 얼굴연구소장 조용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