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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선택 2004]“공포로 윽박질러라” 유권자 겁주기 난무

입력 | 2004-10-20 18:53:00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9일 최대 접전 주 중 하나로 조기투표가 실시되고 있는 플로리다를 방문해 유세를 벌였다. -세인트피터즈버그=AP 연합

《#장면 1=느린 동작으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는 젊은 엄마. 어린 아기를 미니밴에 태우는 아빠. 째깍째깍 음산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시계가 TV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나운서가 불길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테러리스트들은 약한 곳을 노립니다.”
#장면 2=하늘을 향해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무장세력, 폭탄테러를 당해 화염에 휩싸인 승용차, 손목이 잘려나간 병사가 등장한다. “미국인은 오늘도 (이라크에서) 납치되고, 억류되며, 참수당한다”는 아나운서의 낮은 멘트가 이어진다.
장면 1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선거캠프, 장면 2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진영의 TV광고 중 하나다.》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상호 비방을 넘어 유권자를 상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어린이가 함께 보는 TV 광고에서 수류탄이 터져 팔이 잘려나간 장면이 나오고, 후보가 직접 핵 테러 가능성을 거론한다.


90% 이상의 유권자가 일찌감치 지지후보를 정해놓은 상황에서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에 극단적 네거티브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9·11 테러의 상처가 워낙 깊어 자극적이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 이후를 걱정하는 각종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막판 전략은 유권자 겁주기?=공포 분위기 조성에는 후보들이 직접 나서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은 19일 오하이오주 유세에서 “미국의 최대 위협은 테러범들이 핵무기 또는 생화학무기로 무장하고 도시 한복판에 나타나 수십만명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케리 후보의 테러 근절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현직 부통령이 구체적 증거도 없이 핵 테러 위협을 거론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케리 후보도 징병제 도입 및 사회보장 혜택 삭감 가능성을 놓고 유권자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하면 이라크 병력 확충을 위해 징병제가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은 젊은 층 겁주기이고, 공화당이 노년층 의료혜택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노년층 겁주기이다.
케리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한 뉴욕타임스조차 이날 칼럼을 통해 “케리 후보가 진부한 유언비어를 말하고 있다”고 핀잔을 줬다.
▽악몽의 시나리오들=MSN 웹진인 슬레이트닷컴은 18일 선거 다음날인 11월 3일 아침까지 대통령 당선자가 가려지지 않고 길게는 수개월까지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악몽의 시나리오들을 상정했다.
우선 투표의 기술적 문제 때문에 2000년 플로리다의 재검표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 구식 펀치카드 투표용지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 최대 접전 주 가운데 한 곳인 오하이오에서도 유권자의 70% 이상이 펀치카드를 사용하게 된다.
다음은 투표의 유효성 문제. 자신의 선거구가 아닌 곳에서 투표한 ‘잠정투표’를 유효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4개 주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접전 주의 표차가 불과 수천 표밖에 나지 않는다면 잠정투표의 유효 여부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콜로라도의 주헌법 수정안도 골칫거리. 콜로라도는 승자가 독식하는 선거인단을 지지율 비율로 나눠 갖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 중인데, 만약 이번 선거에 이를 적용한다면 큰 논란이 예상된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