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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지오그래픽]남도 가을여행

입력 | 2004-10-21 16:41:00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중국작가의 작품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연구'.


《가을. 있다 하면 있고, 없다 하면 없다 할 만큼 여름과 겨울의 중간에서 어설피 지나 버리는 바람 같은 계절. 콘크리트 숲에 갇혀 자연의 변화를 느낄 기회가 적은 도시인에게는 더더욱 왔는가 싶으면 가버리는 순간의 계절이기 일쑤다.

올해도 단풍행진은 나날이 남행을 계속해 내주 말이면 남도의 산악도 물들일 전망이다. 이즈음 단풍 찾아 남도로 떠날 이라면 광주비엔날레와 전남 구례군 섬진강변의 다무락 마을도 들러보자. 또 조계산 숲에서 무쇠 솥에 불 때어 지어내는 꽁보리밥집, 예스러운 읍성의 초가마을이 정겨운 낙안읍성 또한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 남도 여행길에 바다구경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이라면 갈대 무성한 순천만도 좋을시고.》

○ 미술아 놀자

단풍여행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고 느낀다면 남도 여행길에 우선 광주비엔날레로 가보시라. 미술이라고 해도 전혀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스럽다.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흥미롭다 못해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참 보다 보면 ‘이 정도라면 나도…’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텅 빈 공간에 걸린 털실 몇 올로 보여주는 소중한 공기, 낙수로 일어난 수면의 파문을 통해 열리는 명상의 공간, 하천 쓰레기로 만들어 악취 진동하는 물고기 조형으로부터 경고, 뻥튀기 과자와 명품브랜드(프라다)의 만남을 통해 창조하는 대량 소비사회의 새로운 가치, 소금물통에 담긴 웨딩드레스가 엉긴 소금으로 인해 변하는 형상을 통해 암시하는 결혼의 의미…. 모든 작품이 기발하고 참신해 보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몰입돼간다.

이 작품들은 평범한 이웃이 ‘참여 관객’(총 60명)으로 작품제작에 동참해 작가와 함께 만든 것. 그래서 더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누구나 즐기는 재미있는 미술을 지향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미술이 생활의 단면으로 다가간다는 전래의 숙제를 해결하는 해법의 일단을 보여준 새로운 실험이자 재미나는 놀이판이다.

○ 동구 밖 과수원길…

구례 섬진강변 다무락 마을의 배나무 과수원길.

남원을 거쳐 구례로 가는 길(국도 17호선)에서는 섬진강과 경전선 철로가 만난다. 호젓한 강변도로는 자전거 타기에 좋다. 그 길로 강 따라 내려가다 압록 지나 구례 조금 못 미쳐 국도 18호선 상에서 ‘유곡정’이라는 정자를 만난다. 여기가 다무락 마을(구례읍 계산2리).

산골짝 좁은 길은 국도가 나기 전 강변 주민이 산 너머 대처 구례로 장보러 갈 때 오가던 길. 포장은 됐어도 좁고 굽은 산길은 감과 밤, 배, 석류,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산골마을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을 간직해 걷는 재미가 남다르다.

산골짝의 비탈인지라 집터나 과수원은 모두가 계단식이다. 그 계단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벽마다 돌담을 쌓으니 마을은 온통 돌담 투성이다. 마을 이름은 지천에 깔린 이 돌담에서 왔다. ‘다무락’이란 ‘담벼락’의 토속어란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가을 풍경. 초가집 마당의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조성하기자

마을 꼭대기에 오르니 방 두 칸에 툇마루 딸린 초가 한 채가 있다. 담장은 없지만 앞마당이 있고 무쇠 솥 걸린 부엌도 있다. 손님 들면 군불 때어 구들 놓인 방 덥히고 한 끼는 무쇠 솥에 대통 밥을 지어준다.

예서 하룻밤 지내며 대나무 들고 동네방네 감 따러 다니는 가을여행. 이보다 더 진한 정취가 어디에 있을까.

○ 낙안읍성 초가지붕 조롱박 탐스럽고

산과 바다 두루 경치 좋은 순천이건만 가을 진풍경은 조계산(해발 884m)의 낙엽 쌓인 산길, 조롱박과 빨간 감이 탐스러운 초가마을 낙안읍성 아닐까.

송광사와 선암사, 두 대찰 거느린 조계산. 두 절 잇는 호젓한 숲길에 낙엽이 쌓이면 고즈넉한 이 가을의 운치는 그 깊이를 더한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에 가을은 어느덧 내 곁에 머물고 송광사 저녁예불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에 객의 외로움은 저만치 달아난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가을 풍경. 초가집 마당의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조성하기자

어느 절 골짜기로 오르던 두 절을 잇는 고갯길 한중간(해발 650m)의 꽁보리밥집은 피할 수가 없다. 이 산골에서 길손의 허기를 달래주기도 벌써 20여년. 아이들은 장성해 산을 떠났고 부부는 어느새 초로에 들었건만 구수한 밥맛은 변함없다. 반상 없이 큰 쟁반에 담아내는 산골의 온갖 푸성귀며 나물에 보리밥 쏟아 붓고 고추장 참기름을 넣어 썩썩 비벼 먹는 무심한 산속의 소박한 정찬. 무청, 배춧잎을 된장에 푹푹 찍어 계곡물로 담근 막걸리 안주로 삼으니 예까지 판 발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낙안읍성은 선암사에서 멀지 않다. 읍성 안 마을의 초가지붕에는 조롱박이 열렸고 집 앞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주황빛 감이 탐스럽게 열렸다. 예서 남도음식문화큰잔치(20∼25일)가 열릴 즈음에는 가을도 좀더 깊어지리라.

갈대 우거진 순천만의 개펄 풍경.

○ 순천만 갈대숲의 낙조 여행

푸른 하늘 높기만 한 가을 오후. 파란 하늘에 불길 드리우듯 빨간 색조를 풀어놓는 가을낙조는 사계절 가운데서도 이맘때가 최고다. 저녁노을 질 무렵 순천 만에 나가 갯골 오가는 배에 올라 갈대밭 사이 개펄의 바다를 헤치고 나가보라.

멀기만 했던 자연이 이만치 가까이 다가와 옴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개펄에서 물고기 사냥에 여념 없던 새들이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퍼덕임 소리, 갈대밭 스치고 지나온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릿한 바다냄새, 개펄 표면에 새겨진 아리아리한 물결무늬…. 어느 것 하나 사람 손이 닿은 것 없는 순수한 자연의 작품이다.

○ 여행정보

▽광주 △광주비엔날레(www.gb.or.kr)=11월 13일까지 매일 개장(오전 9시∼오후 6시). 062-608-4114

▽구례 △다무락 마을(http://damurak.go2vil.org)=김영두 이장 016-9810-8066 △송광사↔선암사 산길=8km △꽁보리밥집(주인 최석두)=061-754-3756. 송광사로부터 3.5km(1시간10분 소요). 명절 당일만 쉼. △남도음식문화큰잔치=www.namdofood.or.kr

▽남도 맛집=전남도청 홈페이지(www.jeonnam.go.kr)의 ‘남도음식명가·별미집’(http://foodhouse.jeonnam.go.kr) 참조.

광주·구례·순천=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