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우리측에 주한미군 전술지휘통제(C4I) 체계 현대화 비용을 방위비 분담 항목으로 추가해 줄 것을 공식 요구해 왔고, 이에 대해 우리측은 그런 요구가 8월 가서명한 용산기지 이전 합의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미 군사관계가 다시 중대한 고비를 맞는 듯하다.
한미간 방위비분담 협상은 이미 1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협상 때마다 갈등과 불협화음의 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그간 한미 양측은 연합방위태세 강화 및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대체적으로 원만히 합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미국측의 C4I체계 현대화 비용분담 요구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현재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자이툰부대 이라크 파병 등 한미군사협력 관련 비용지출 규모가 상당히 늘어나 있는 데다 국내 정치 경제적 상황 또한 방위비분담금 증액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측 요구를 일축한다든가 협상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결국 한미 양측이 방위비분담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데에 달려 있다. 가령 미국측으로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우리측으로서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식의 산술적 계산에 의한 ‘비용분담’ 차원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런 방위비분담의 앞날은 결코 밝을 수 없다. 그러나 방위비분담이 ‘역할분담’까지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개념이라면 이는 산술적이 아닌 전략적 계산에 의한 ‘방위분담(defense-burden sharing)’이 된다. 이 개념이 바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동맹관계를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대등한 한미관계를 추구한다면, 이런 방위분담 차원에서 비용분담과 함께 역할분담 의지도 보일 필요가 있다.
방위비분담은 또한 미국측의 일방적 요구에 대한 우리측의 수동적 반응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측 요구를 우리측의 요구와 연계해 합의하는 상호주의적 또는 상호의존적 개념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국방 당국의 대미 요구 우선순위가 구체적으로 설정돼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위비분담 개념을 이번 미국측의 주한미군 C4I체계 현대화 비용 분담 요구에 적용해 본다면, 정부 당국은 우선 미국측의 요구를 단순히 추가적인 비용 분담 차원의 문제로 간주해 가급적 우리의 부담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상할 것이냐, 아니면 역할분담 차원의 문제로 확대해 주한미군 C4I체계와 우리 군 C4I체계의 상호연동, 북한 장사정포에 대비한 대포병 레이더 체계 보강 등 우리 군의 정보전력 현대화 및 역량 강화는 물론 한미간 군사적 상호의존관계를 심화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냐를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한미 양측이 이런 성격의 방위비분담 협상을 추진한다면 각각의 요구사항을 적정 수준에서 반영하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제3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의 결과가 주목된다.
박용옥 한림대 교수·전 국방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