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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예방 안전보장’

입력 | 2004-10-21 18:33:00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의 안전보장 환경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복잡해지고 있다”며 “집단이 주도하는 테러공격 가능성과 고전적 전쟁 가능성, 양자의 결합에 의한 다양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지적처럼 우리는 다양한 위협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테러, 대량파괴무기 등 새로운 위협과 특히 이 두 위협이 결합될 때의 무서움은 말할 것도 없다. ‘파탄 국가(failed nation)’ 주민이 난민, 유민(流民)화될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인간의 안전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창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석유 및 가스 수요 폭발은 세계의 에너지와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에 원자력발전소가 증설되면 핵물질 관리 리스크도 커질 것이다. 인터넷을 필두로 하는 정보통신 혁명은 사이버전쟁 위험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 ID 도용과 위조 문제를 낳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국과 인접해 산성비와 싼샤댐 등에 의한 환경 리스크가 높아질 위험이 있다.

어떤 일본 전문가는 아래 세 가지의 거대한 위협을 거론한다.

①감염증: 에이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독감 등 감염증의 위험은 최근에야 알려지고 있다. 이런 위협은 세계적으로 수십만명의 희생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 1918, 1919년에 걸쳐 스페인독감으로 세계에서 2000만∼2500만명이 숨졌다.

②지구 온난화: 이대로 진행되면 세계 생태계는 급변할 것이다. 특히 식량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보리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쌀은 일본 본토에서 홋카이도로 각기 생산지가 이동하고 이에 따른 인구 이동, 사회 변동,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③미국의 일극(一極) 구조: 미국은 정보자원 측면에서 압도적 힘을 갖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에 맞설 힘이 없다. 이런 구조는 국제정치상 뜻하지 않은 재앙을 일으킨다. 이번 이라크전쟁이 그런 예이다.

이런 위협이 확산돼 복잡해지면 국가간 억제와 균형이란 안보 개념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예방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예방이란 어렵다. 미 정부는 미 본토에 대한 대량파괴무기 테러공격이 선박과 항만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경고하지만 최근 3년간 미국이 361개 항구의 테러대책과 관련해 쓴 돈은 이라크전 전투비 3일치에 지나지 않는다.

총리 자문기구 보고서는 국제적 안전보장 환경을 개선해 위협을 예방하는 일은 일본의 안전보장에 직결된 임무라고 지적했다. 예방을 억지력과 방위 못지않은 안전보장의 중심 개념으로 삼아야 한다.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란 말은 자리 잡았으나 ‘예방 안전보장’이란 말은 생소하다. 무엇보다 정치가들이 예방을 위해 적극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방 외교가 성공하면 비극을 피할 수 있다.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크게 보도될 리 없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결국 정치인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대도시화, 거대기술화, 세계화로 예방에 실패했을 때의 인적 물적 피해는 엄청나다. 발상을 전환할 때다.

만일에 대비해 예방에 힘을 쏟는 것은 음덕을 쌓는 일과 같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