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1일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추진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대해 “처음 들어 보는 이론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된 헌재 결정 선고과정을 지켜본 뒤 수도와 관습헌법을 연결한 논리에 대해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그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헌재 결정 직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헌재 결정의 내용과 취지, 타당성과 효력 범위 등을 심층적으로 검토해서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당정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청와대는 다음주 중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노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법조계 엇갈린 반응…“法 해석 이례적”“과도한 개입”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해석한 것에 대해 법조계는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는 “관습헌법의 존재와 효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관습헌법을 고치려면 헌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헌재의 해석은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린 데 대해 “보수적 법해석 성향을 보여 온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국민투표권)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해석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수도 이전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큰 문제인데 대통령이 공약을 했다고 해서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추진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의 심재륜(沈在淪) 변호사는 “한 나라의 수도는 헌법에 명시할 만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한 판사는 “눈에 보이지 않고, 국회가 만들지 않는 법에 성문법과 똑같은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느냐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법률 교과서는 관습법을 인정하고 있고 나라에 따라 관습법 체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성문헌법 국가이고, 관습헌법을 인정한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의 한 판사는 “법원에서도 관습법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인정해 왔다”고 말했다.
헌재의 한 연구관도 “관습법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란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관습헌법을 인정한다 해도 ‘수도=서울’이라는 것이 관습헌법에 해당하는지도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심 변호사는 “헌재가 헌법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가장 권위적인 기관이란 점을 상기시켰다”며 “헌재의 존재이유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형태(金亨泰) 변호사는 “헌재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될 문제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헌재 재판관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법관료’인데 정치적 사건에 대해 이들이 결정권을 갖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