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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희망의 원리’ 완역한 박설호교수

입력 | 2004-10-22 16:43:00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년)의 ‘희망의 원리’(전 5권·열린책들)가 완역 출간됐다. 이 책의 완간에는 원고지 1만3000장 분량의 번역작업에 10여년을 매달려 온 박설호 한신대 독어독문과 교수(49·사진)의 남다른 노고가 담겨 있다.

박 교수는 1980년대 중반 독일로 유학가 유토피아 연구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블로흐를 접하게 됐다. 그에게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의 국가적 모델을 연구했다면, 블로흐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 갈망의 근원을 밝혀낸 학자’였다.

블로흐의 대표작인 ‘희망의 원리’는 철학과 종교 회화 건축 음악 문학 동화 영화 등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희망이 어떻게 인간의식에 작동하는지를 추적했다. 1938∼1947년 10년에 걸쳐 저술된 이 책은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으로 독일에서도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해 인간 갈망의 근원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과거지향적 꿈의 해석가였다면, 블로흐는 희망이라는 ‘낮 꿈’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동력임을 규명한 미래지향적 꿈의 해석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로흐는 현실에선 실패한 지식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독을 택했다가 현실 사회주의에 좌절해 다시 서독으로 망명해야 했다. 희망으로 믿었던 것이 환상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당시 블로흐는 ‘희망의 내용은 변할 수 있지만 희망의 동인 만큼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희망은 아직 의식되지 못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이며, 환멸을 전제로 늘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1980년대 말 박 교수가 귀국했을 때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80년대에 변혁을 꿈꿨던 이들에게는 좌절과 환멸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희망의 원리’를 소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은 그런 시대 분위기에서 생겨났다.

1993년과 95년 전체의 5분의 1 분량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됐지만 완역은 좌절됐다. 그는 언젠가 출간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번역을 계속했고 2002년 정식 판권계약을 한 열린책들 출판사에 최종 원고를 넘겼다.

건강악화로 휴직하고 경기 안산시 자택에서 요양 중인 그는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일이다”라는 ‘희망의 원리’ 서문의 글귀로 소감을 대신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