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유학 왔다가 프랑스인과 결혼해 3년째 낭트에서 살고 있다. 유학생이었을 때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국내자’의 입장에서 프랑스 사회를 보게 된다. 그래도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늘 관심사다.
‘책을 많이 읽는 나라’답게 프랑스에는 서점이 많다. 나 역시 서점에 자주 간다. 자주 찾는 곳은 만화 섹션. 진열대에서 한국 만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 만화가 이곳 서점에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 부쩍 늘어나 이제는 모두 사서 보기 힘들 만큼 종류가 많아졌다.
최근 서점에서 한복 입은 여성의 그림이 표지에 실린 만화를 발견했다. 제목은 ‘통신판매 신부’였다. 만화계에서는 꽤 알려진 캐나다 작가의 작품으로 한 캐나다 노총각이 동양 여성을 신붓감으로 통신판매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 여자를 ‘구입’해 결혼하는 얘기였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이미지로 가득 찬 만화를 보면서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누를 수 없었다. 남북 분단, 개고기 등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한국의 모습이 이 만화로 인해 더욱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그 만화책을 사들고 집에 왔다. 그 책을 읽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점에서 치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다시 서점에 가 보니 그 만화책이 10권이나 쌓여 있는 게 아닌가. 1권만 진열됐을 때는 처리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는 듯했다. 이 책이 프랑스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어디 만화뿐이랴. 프랑스인들이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일본 중국 등만 주목받고 있을 뿐이다. 일본 책은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별로 분리돼 있다. 반면 한국 책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책과 한데 뒤섞여 있다. 그나마 진열된 10권 안팎의 한국 책 대부분이 특정 작가 한 명의 소설집이다. 프랑스인들이 다양한 한국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처음엔 한국 문화를 왜곡하는 일을 대해도 그냥 지나쳤다. ‘나 혼자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나서지 않으면 잘못된 것을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작은 행동이나마 실천하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나올 때면 e메일을 보내 알려 줬다. 모임이나 파티에 갈 때면 한국가요 CD를 가지고 가서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프랑스인들과 일본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면 꼭 한국 역사를 짚고 가는 버릇도 생겼다. 독도 분쟁, 일본군위안부 등에 대해 얘기해 주면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복잡한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프랑스 대형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올드 보이’가 상영됐다. 프랑스 친구들을 설득해 영화를 보러 갔다. 내 눈은 스크린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쏠렸다. 완전 매진이었다. 극장을 꽉 메운 관객들을 보면서 조금씩 한국 문화에 가슴을 열어 가는 프랑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훈미 주부·프랑스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