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명하지도, 창조하지도 않았다.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면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을 창조했나? 여당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오만방자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부 법조인과 법학자들도 “헌재가 헌법 창설 기관이냐”며 비판한다.
헌재는 ‘수도=서울’이라는 사실이 관습헌법에 해당한다고 했다. 헌재가 사용한 ‘관습헌법’은 엄밀히 말하면 헌법의 역사가 오래된 독일 등 선진 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헌법적 관습’ 또는 ‘헌법관습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관습이 단순한 예의 또는 도덕의 수준을 넘어 사회의 법적 확신을 얻을 경우 관습법으로 인정된다. 그 관습 가운데 △오랜 기간 △계속해서 △국민의 공감을 얻어 △헌법적 가치로 수용된 것이 헌법적 관습이다. 수도의 위치와 국기(國旗), 국가(國歌)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역사가 있는 한 헌법적 관습은 존재한다’고 하기도 한다. 너무 당연해서 성문헌법전에 명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헌재도 이처럼 이미 존재해 오던 헌법적 관습을 발견해 이번 사건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관습헌법으로 성문헌법을 훼손했다는 주장도 무리다. 독일의 히틀러는 기존 헌법을 그대로 두고 대신 똑같은 헌법전에 그 내용과 다른 헌법 조항을 만들어 기존 조항을 무력화한 적이 있다. 이런 경우가 헌법 훼손 또는 헌법 침식이다.
헌재 결정은 관습헌법으로 성문헌법 내용을 뜯어 고친 것이 아니다. 헌법적 관습도 성문헌법의 보충적 효력이 인정되는 만큼 성문헌법과 같은 절차로 바꿔야 한다고 한 것일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문헌법과 마찬가지로 헌법적 관습의 개정 권력도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은 헌법개정권력자로서의 국민의 지위를 확장한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은 헌법을 찾아 국민에게 돌려줬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수형 사회부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