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입단 이후 13년만에 타이틀을 딴 김성룡 8단은 “결승 상대였던 후배 김주호 4단도 첫 타이틀을 꿈꿨는데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김 전자’, 축하해.”
프로기사들은 최근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우승상금 4000만원)에서 김주호 4단을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김성룡 8단(28)을 ‘김 전자’로 부르고 있다. 타이틀 보유자에겐 타이틀 명칭을 이름 뒤에 붙여주는 것이 이 동네의 관례다.
우승 전 그의 별명은 ‘보급기사’였다.
바둑을 전파하는 활동이 ‘본업’이고 프로기사로서 치르는 대국은 ‘부업’이라는 뜻이다. 그는 2000년 LG배 세계기왕전 등 5개 기전의 본선에 진출한 뒤 본격적으로 보급기사로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기전에 출전했으나 승부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는 생애 첫 우승에 마냥 겸손해 했지만 기사들은 준결승에서 국내 기전 3관왕인 최철한 8단을 누르는 등 실력으로 타이틀을 땄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왕중왕전 3국에서 이겨 우승한 뒤 잠시 눈물을 쏟았다.
오랫동안 보급기사를 자칭했음에도 아직 승부사의 야성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승부의 정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
“기보대로 놔보는 것은 해설을 잘 하기 위해서지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한때 반짝했다고 승부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그가 활약하는 ‘보급’의 무대는 방송과 인터넷. 바둑TV 바둑ch를 비롯한 케이블 TV와 사이버오로 타이젬 등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인터넷 지도 대국이나 월간바둑에 기고하는 원고료도 짭짤해 한 해 수입은 1억원에 이른다. 그중 대국 수입은 5%에 불과하다.
그는 이창호 9단 때문에 승부사의 세계를 접었다고 한다. 한 살 위인 이 9단이 버티고 있는 한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한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을 따라갔다가 바둑이 좋아 돌아왔고,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그땐 군대를 갔다 와도 승부에 자신 있었어요. 제대 후 첫 상대가 14세의 원성진 5단이었어요. 제가 반집을 이겼는데 원 5단이 펑펑 우는 거예요. 반집 진 게 분해서가 아니라 군대 갔다 온 퇴물에게 졌다고 해서 울었다더군요.”
바둑 전문 채널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톡톡 튀는 말솜씨 덕분이다. 여느 해설자들이 “저 수로 흑이 곤란한데요”라고 할 때 그는 “흑이 쫄딱 망했어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대국자의 심리를 분석해 ‘왜 저런 수를 뒀는지’를 짚거나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명쾌한 해설을 하는 것도 그만의 장기다.
그는 32명의 기사가 출전한 한국바둑리그의 해설을 맡게 되자 A4 용지로 500장에 이르는 관련 자료를 모았다. 이는 한국기원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면 조훈현 9단이 올해 흑으로 5승 12패, 백으로 8승 4패를 했어요. 조 9단이 출전할 때 그런 통계를 설명해 주는 거죠. 막연한 감으로 해설하는 시대는 지났거든요.”
그는 45세쯤 은퇴를 예상하고 있다. 은퇴는 대국에 나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바둑 교실을 열고 싶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빛나는 보석으로 바꿔놓고 싶어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