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승복과 국정쇄신 요구가 나오는 것은 여권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절박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당내에선 헌재와 정면 대결하는 양상으로 비칠 경우 결국 집권여당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소모적인 논쟁에 매몰될 경우 ‘4대 법안’ 추진마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충청권 출신 의원들의 헌재 재판관 탄핵 움직임을 당 차원에서 급히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간사로서 수도 이전 문제에 역할을 해 왔던 박기춘(朴起春) 의원은 24일 “이유와 과정이야 어떻든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이상 존중하고 승복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각에선 청와대와 국회만 서울에 남기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하지만 그럴 경우 야당이나 반대론자들이 가만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편법적인 수도이전론에 대한 신중론인 셈이다.
이기우(李基宇) 의원은 “헌재 결정이 시대 분위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승복해야 한다. 법리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며 헌재와 법리 논쟁을 불사하는 당내 일부 분위기에 선을 그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그동안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당내 실용적 386들과 중진 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丁世均) 의원은 “헌재 결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당이 나서서 그러는 것은 옳지 않다”며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지역균형을 추진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참에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헌재가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잘 읽어야 한다”며 “특히 헌재 결정에 매우 호의적인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여당의 정책이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는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수도 이전과 국가보안법 폐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한결같이 30%대에 머물러 있는 점을 들어 자칫 여권의 지지율이 30%선에 고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박 의원은 “여당이 혹시라도 국론분열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나간다면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국민만 피해를 볼 것”이라며 “국정의 중심을 민생경제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 결정을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재점검 기회로 삼자고 촉구한 정장선 의원의 발언도 힘을 받고 있다. 그의 발언은 그가 속한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 등 당내 중도보수파 의원들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헌재에 대한 불만이 완전히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충청권 출신 의원 및 일부 당권파 의원들은 헌재 재판관에 대한 탄핵 주장을 아직 거두지 않고 있다. 이강래(李康來) 의원도 “민주적 대의성이 없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당은 계속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