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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재경]한국 언론법, 미국 언론법

입력 | 2004-10-24 18:44:00


한국 사람은 법을 좋아한다. 언론법률은 특히 사랑을 받는 느낌이다. 1980년 권력을 잡은 세력은 사회를 정화(淨化)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벌였다. 가장 철저하게 수술된 부분은 언론관련 법률일 게다. 언론기본법은 발행인의 조건부터 윤전기 기준까지 꼼꼼하게 규정했다. 1도(道) 1사(社) 원칙으로 지방신문을 정리했고, 통신사도 하나로 통합했다. 방송법은 따로 개정해 공영방송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법률체계는 6·29선언 이후 새로운 체제로 바뀐다. 이번에는 발행의 자유가 확대되고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가 열렸다.

▷새 법률이 도입될 때마다 우리는 여러 나라로부터 법률제도를 무수히 도입하고 참고했다. 영국의 공영방송법, 독일 작센주의 신문법, 스웨덴의 신문지원법, 프랑스의 배달제도, 미국의 커뮤니케이션법 등이 그것들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이들 법률로도 부족해 공정거래법과 세법까지 동원했다.

▷민주화세력도 법률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현 정부와 집권당은 2년 가까운 장고(長考) 끝에 다시 언론개혁 입법에 나섰다. 명분은 역시 언론을 자유롭게 하고 시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잘못된 언론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강력하다. 고칠게 많다 보니 이 법안에는 시장질서에 관한 내용에서부터 광고의 양, 게다가 편집기준까지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세밀하게 정의했다. 1907년 ‘광무신문지법’부터 따지면 도대체 언론법률을 얼마나 고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언론법이 모범적인 법률로 다른 나라의 학습대상이 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개정되는 언론법률의 바탕에 어떠한 원칙이 한 나라의 언론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설파하는 이론가를 만나본 경험도 없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 전체가 45단어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 ‘의회는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이 50번 가까이 바뀌는 동안 유일한 언론법인 수정헌법 1조를 한 차례도 손대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래도 미국의 언론은 가장 자유롭다.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