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지금도 한국 최고의 야구 도시죠. 어떻게든 인천에 야구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는데….”
10여 년 동안 4만 여점의 야구 관련 소장품을 모아 온 최호왕씨(31·인천 남구). 주변에서는 그를 ‘야구 소장품 수집가’가 부르지만 정작 자신은 ‘야구인’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아 장애인(2급)인 그는 이를 이겨내고 동인천중학교 2학년까지 야구 선수(유격수)로 뛰었다.
최씨는 10여 곳의 창고에 보관해온 야구 소장품을 제주도 서귀포로 옮기고 있다. 내년 3월경 야구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서다.
소장품 중에는 1905년 황성기독교청년회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한국에 야구를 처음 전파한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P.Gillett·한국이름 길례태·吉禮泰)의 사진과 갑자원 야구대회 등 일제 시대 주요 야구대회 메달이 있다.
이밖에 인천공립상업학교(인천고등학교의 전신) 야구부 사진, ‘30승 괴물투수’로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를 풍미한 장명부 선수의 사인 볼을 비롯해 장훈 백인천 김동엽씨의 유니폼, 배낭, 인천의 첫 프로구단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스’ 관련 필름 등이 있다.
그가 보유한 소장품 수는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소장품 수 보다 많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야구를 하던 분들이 많이 살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전 삼미 슈퍼스타스 박현식 감독(80), 인천공립상업학교 때 외야수로 뛰었던 윤계옥씨(90) 등 인천의 야구 원로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김경기, 김기태 선수와도 친구 이상의 우정을 쌓고 있다.
한국 장애인 중 처음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미국 장애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죽마고우인 전 OB 베어스 송경수 선수(투수)가 1995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유족으로부터 야구관련 유품과 소장품 등을 넘겨받아 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소장품 중 70% 가량은 뜻있는 분들에게 기증받은 거예요. 원로 야구인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야구를 그만 둔 선수나 유족들이 주로 기증을 했죠.”
이렇게 모은 물건들을 여러 곳의 창고에 나눠 보관하다가 3년 전 그 중 한 창고에 누전으로 불이 나 4000여점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야구 박물관에 대한 인천시의 소극적인 대응이다. 고향인 인천에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시의 무관심으로 뜻을 이룰 수 없었던 것.
최씨는 고향을 떠나면서도 “인천이 야구의 도시라지만 초중고교 선수 층이 얇고 지원도 예전만 못합니다. 인천에서 제2의 박찬호, 최희섭 선수가 나와 중흥기를 맞기를 바랍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